며칠 전, 「천주교부산교구사 자료집」 제1집, 「교구연보(1878~1940)」를 읽고 있는데, 드망쥬 주교님의 ‘1934년 보고서’에서 장순도(張順道. 바르나바, 1903~1971) 신부님에 대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본인(드망쥬 주교)에게 있어서 보다 슬펐던 일은 1929년에 사제서품을 받은 한 젊은 사제(장순도 신부)를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후쿠오카(福岡) 교구에서 경영하고 있는 ‘비와사키’(Biwasaki) 나병 환자 수용소로 보내야만 했던 일입니다.”
이 구절을 읽은 순간, ‘젊은 사제가 나병이라니, 아니 한센병에 걸렸다고?’ 마음속으로 ‘설마’했습니다. 지금에야 한센병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변화되었지만, 1934년 전후에는 한센병은 ‘문둥병’이라 칭했고, ‘하늘이 내린 벌’ 로 치부하던 시절이었을 텐데! 문득 젊은 사제 장순도 신부님이 겪었던 고통, 즉 손가락 끝마디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얼굴 형태가 점차 일그러지는 육체적 아픔을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막 본당 주임 신부가 되어 열심히 사목활동을 하려던 때에 ‘나병 진단’을 받고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 역시 무척 컸을 테지요. 계속해서 보고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장 바르나바 신부는 대성당 보좌 신부로 있을 때 약간의 나병 증세를 나타냈지만 적당한 치료로 증세가 사라졌었습니다. 그 후 그가 외교인 지역에 창설된 본당(합천 본당)에서 사목할 때 처음에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작년 피정 때 다시 재발한 병은 치료를 필요로 했지만, 이번에는 치료가 아무 소용 없었고 병은 급속히 진전하였습니다. (장순도) 신부는 성직에서 은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임지를 떠난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희생이었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929년 대구 주교좌 성당 보좌 신부를 할 때에는 청년 운동과 언론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장순도 신부님. 그 후 1932년 합천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했을 때의 마음도 생각해 봅니다. 일제 강점기,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에서 한국인 사제로 얼마나 열심히 살고자 했을까! 그러다가 주임 신부 2년 차, 1934년에 ‘한센병’ 진단을 받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온 삶이 끝난 듯한 느낌이었을 텐데! 계속해서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현재(1934년) 나병 환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섬(소록도)으로 보내지고 있는데, 총독부는 전염을 막기 위해서 이 섬의 모든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신부는 이 수용소에서는 동료 신부들의 방문도 받지 못하고 수녀들의 헌신적인 간호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1934년 당시, 한국에서 한센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무조건 ‘소록도’로 강제 수용을 당했으며, 그 섬에 들어간 후에는 그 어떤 사람의 방문이나 문병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치료보다는 격리와 수용 개념의 소록도 한센인들의 당시 생활은 비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일본의 요양 병원)에는 작은 성당이 있어서, 자신의 일본어 지식의 힘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사제로서의 임무를 실제로 수행하면서,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미사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부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선택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장순도 신부님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 곳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한센병 환자 요양시설에서 한센인들과 살면서 영적 지도 신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옵니다.
“본인(드망쥬 주교)은 6월에 그를 보러 갔는데 그는 자신의 무서운 고통을 감사드리듯 아주 쾌활한 기분이었습니다.”
보고서에는 또 대구 교구 주교님이 장순도 신부님을 만나러 일본에 갔었는데, 장순도 신부님은 자신이 걸린 한센병 앞에서 아주 쾌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가톨릭신문」에는 장순도 신부님이 1962년, 즉 28년 만에 일본에서 귀국하였고 1971년까지 ‘은양원’, 칠곡천주교병원, 의성에 있는 환자들의 영적 지도 등 오로지 한센인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고 합니다.
1963년 10월 30일, 장순도 신부님 회갑 때 축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천주님의 오묘한 섭리는 장 신부님을 통하여 가장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인간에게까지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을 증명하셨고….’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장순도 신부님에게 ‘나병’을허락하시어, ‘나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으니, 그분 섭리에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또한 한센인으로 평생의 삶을 살면서 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셨던 장순도 신부님을 생각하니 지금 일그러진 내 마음의 온갖 불평불만도 평온히 가라앉는 듯하니…. 조용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글 _ 강석진 신부 (요셉,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1988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1997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1998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강대학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역사 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전주교구 내 ‘개갑 순교성지’(전북 고창소재)에서 성지 담당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강석진 신부의 인생 수업」(가족편, 관계편), 「순교, 생명을 대변하는 증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