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의 소음에 지친 신앙인들에게 ’내면의 비움’을 선사할 영적 대작이 마침내 온전한 우리말로 번역됐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이부현(바오로) 명예교수가 30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국내 최초로 완역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중세 고지(高地) 독일어 작품집」(전 6권)이 바로 그 결실이다.
이번에 출간된 완결판인 ‘작품집 Ⅳ, 1-2’를 끝으로, 에크하르트가 남긴 독일어 설교 117개 텍스트와 주요 영성 논고를 왜곡 없는 원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도미니코회 수사 신부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는 학술어인 라틴어 대신, 민중의 언어인 ‘중세 고지 독일어’로 설교했던 인물이다. 지식의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직접 하느님을 만나는 생생한 언어를 건넸던 그는, 이 과정에서 독일 철학과 신학의 초석을 놓은 ‘삶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은 ‘신과의 신비적 합일’이다. 그는 인간의 유한한 이성이나 지식, 혹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온전히 만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제시하는 영성의 길은 파격적이면서도 단순하다. 하느님 외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 ‘내맡김(Gelassenheit)’과 인간적인 욕망이나 종교적 고정관념마저 버리고 떠나는 ‘초연함(Abgeschiedenheit)’이다. 모든 소유와 자아를 철저히 비워낼 때, 비로소 가장 깊은 본연의 자리인 ‘영혼의 근저’(Grund der Seele)에서 살아계신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영성은 현대 존재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의 선불교 사상과도 깊이 맞닿아 있어, 오늘날 현대 사상계에서도 동서양을 잇는 영적 가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기존의 국내 소개서들이 영어판이나 현대 독일어판을 단편적으로 번역한 것과 달리, 이번 전집은 700년 전의 중세 고지 독일어 사본을 직접 번역하고 역주를 덧붙여 사상의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학술적·교회사적 가치가 크다.
역자 이부현 교수는 “유럽에서 이미 깊이 인정받고 있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심오함을 국내 독자들에게 원전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신앙의 깊은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이 에크하르트의 영적 원음(原音)을 들으며 내면의 참된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