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소년이 간직한 사제의 꿈은 작은 시골 마을 ‘느지지’에서 시작됐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정겨운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삶의 굽이마다 함께하신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수원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자신의 삶과 신앙 여정을 되돌아보는 묵상집을 펴냈다.
이 책은 이 주교의 저서 「인생 그리고 행복」, 「지상에서 천국처럼」과 월간 「외침」에 연재한 ‘주교일기’ 내용을 선별해 보완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책은 크게 ‘임마누엘 하느님’, ‘하느님 백성 한가운데서’, ‘지상에서 천국처럼’ 등 3개 장으로 구성됐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회고는 소신학교와 대신학교 시절, 사제품 순간의 떨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와 총장으로서 미래의 사제들을 양성하던 시간으로 확장된다. 이 기록들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사목 경험, 교구장으로서 신자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말씀을 실천해 온 삶으로 이어진다.
또한 책에는 교구장과 주교회의 의장이라는 직책이 가져온 중압감에 대한 고백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이 주교는 2024년 9월 사도좌 정기 방문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한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사제와 백성 한가운데 머무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시간을 공동선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한다.
이 다짐은 이 주교가 책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기도’와 연결된다. 그는 수년 전 사제 연례 피정에서 3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성체 앞에 앉아 오롯이 주님을 마주한 180분.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이 주교는 수많은 청원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었음에도 고작 30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러나 반성 속에서 성체조배를 마친 뒤 그가 얻은 것은 평화였다. 마음 깊이 주님을 만난 묵상과 기도의 시간 덕분에 일상에서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의 일화도 함께 전한다. 함께 환자와 빈민을 돌보던 수녀들이 기도 시간을 줄여 달라고 청하자, 데레사 수녀가 오히려 기도 시간을 1시간 더 늘렸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이 주교는 그리스도인이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고 봉사해야 함을 일깨운다.
이 주교의 경험과 데레사 수녀의 이야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우선 과제가 기도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신앙인들에게 “일이 많다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가 차지할 틈은 어디에도 없다”며 “기도 없이 어떤 선행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강조한다.
“신앙인은 자주 습관적으로 주님 품 안에, 불타는 그분의 사랑 속에, 그 원천적인 사랑(amor fontalis) 속에, 사랑의 불덩어리이신 하느님께 푹 잠겼다 나와야 한다. … 이 세상에서 일상적인 활동과 움직임을 접는 날에 이런 천상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신앙인은 오늘의 고단한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이다. 결국 하느님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것이다.”(165쪽)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