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년 9월 14일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양업 신부는 한 해 동안 2867명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어른 171명에게 세례성사를 주었으며, 관할 구역의 신자는 4075명, 예비 신자는 108명이라고 알렸다.”(109쪽)
“최양업 신부는 박해 시기 동안 이어지지 못했던 사목 순방을 위해 낮에는 80리에서 100리를 걷고, 밤에는 고해성사를 준 다음, 새벽에 다른 교우촌으로 이동하는 무리한 일정을 이어 갔다.”(117쪽)
「양들이 있어 나는 걸었네」는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 최초의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 귀국 후에는 당대 유일의 조선인 사제로 12년간 조선 곳곳에 찾아가 교우들을 만났던 가경자 최양업(1821~1861) 신부의 삶을 담은 책이다.
한때 최양업 신부가 맡았던 사목 순방 지역은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역에 달했다. 조금 줄어든 뒤에도 경기도와 충청도 먼 지역·전라도·경상도·강원도 지역은 모두 그의 사목 관할 구역이었다. 걸었던 총 거리가 9만 리, 즉 3만 5000㎞로 추정될 정도다.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이유다.
책은 최양업 신부가 스승 선교사들에게 남긴 서한과 지금의 연구 자료 등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톺아보고, 그 업적을 사제이자 통번역가, 교육자로 재조명한다.
실제로 부제품을 받고 홍콩에 머물던 최양업 신부는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작성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가운데 기해박해 순교자 73인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 자료는 교황청으로 전해졌고, 순교자 82위가 모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훗날 가경자 82위 중 79위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와 함께 103위 순교 성인으로 선포됐다.
조선에 입국한 후에는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로 ‘천주가사’와 교리서를 지어 교리 교육의 토착화에 힘썼다.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신학교를 관리하면서 세 신학생을 페낭의 신학교로 보내 신학 교육을 받게 했다. 그가 남긴 편지들 역시 신앙적 의미뿐만 아니라 교회사·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1999년부터 최양업 신부를 연구하며 시복 시성 추진 과정의 실무를 맡아온 저자 류한영(청주교구) 신부는 “최양업 신부가 우리 교회에 남긴 발자취는 한국 천주교회사의 흐름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안에서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을 살펴보는 일은 곧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갈고닦는 일”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