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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3384자’ 황사영 핏빛 편지에 담긴 뜨거운 신앙 서사 「백서(帛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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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진복이 황사영(알렉시오, 1775~1801)의 무덤 앞에 섰다. 200여 년 전 극심한 박해 속에서 조선교회의 참상을 편지에 써 내려간 황사영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이상훈(힐라리오) 작가의 역사소설 「백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진복의 시선을 따라 이 역사적 물음에 다가간다. 하느님의 종 황사영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복이 황사영 백서(帛書)와 초기 한국교회 인물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1801년 신유박해의 시간을 오늘로 불러낸다.

진복은 한때 사제가 되려 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걷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사제가 되지 못했다는 내면의 부채감을 안고 천주교회사와 순교자들의 삶을 연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진복에게 박해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삶은, 단순한 연구 대상을 넘어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연구는 광암 이벽(요한 세례자)을 비롯해 이승훈(베드로), 정약용(요한 사도)과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형제, 정명련(정난주 마리아)과 정하상(바오로) 등 초기 한국교회 인물들의 삶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혼인과 혈연 등으로 얽힌 이들의 관계를 따라 서학 연구에서 출발한 천주학이 신앙으로 자리 잡고, 박해 속에서도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 중심에는 황사영이 남긴 한 장의 편지가 있다. 신유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 배론의 토굴에 숨은 황사영은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보낼 백서를 작성했다. 가로 62cm, 세로 40cm 크기의 명주천에 총 1만3384자로 쓰인 백서에는 조선교회의 사정과 박해의 전개 과정, 순교자들의 행적,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활동과 죽음이 담겼다. 폐허가 된 조선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안도 적었다.

편지 말미에는 청나라나 서양의 군사력을 빌려서라도 박해를 멈추게 해야 한다는 구상이 담겼다. 백서를 압수한 조선 조정은 이를 역모의 근거로 삼아 황사영을 처형했고, 천주교 탄압을 한층 강화했다.

소설은 조선 조정이 백서 일부를 축약해 청나라에 제출한 ‘가백서’와 원본 백서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가백서는 청나라와 관련된 내용은 생략한 채 서양 군대 파견 요청을 강조함으로써 박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이용됐다.

독자는 진복의 추적을 따라가며 황사영이 처했던 시대와 선택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은 황사영이 죽은 뒤의 이야기도 비춘다. 제주 유배지에서 신앙을 이어간 아내 정명련과 조선교회 재건에 힘쓴 정하상의 삶을 통해 황사영의 죽음이 다음 세대의 신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1801년 압수된 백서 원본은 오랫동안 의금부에 보관되다 뮈텔 주교에게 전해졌다. 이후 1925년 한국 순교복자 79위 시복식을 계기로 교황 비오 11세에게 봉정됐다.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라는 부제는 백서가 한 세기를 넘어 마침내 교황에게 이른 여정을 뜻한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추천사를 통해 “황사영 알렉시오의 편지는 보통의 신심으로 닿을 수 없는 경지이자 간절한 소망의 결정체”라며 “「백서」는 사람답게 살고자 천주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신앙의 뜨거운 연대와 희생의 처절한 서사를 담고 있다”고 전했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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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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