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어 수업」, 「믿음 수업」 등을 통해 삶과 인간에 관한 질문에 응답해 온 한동일(사무엘) 교수가 ‘삶을 위한 수업’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돌아왔다. 교황청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교회법 박사인 그는 이번 책에서 로마법을 통해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책은 단순히 로마법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서로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으로 법을 바라본다. 결혼과 이혼, 돈과 계급, 평등과 젠더, 낙태와 성매매, 범죄와 형벌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쟁점을 살피며 정의의 기준을 되묻는다.
현대 법질서의 토대가 된 로마법은 재산과 계약, 상속과 소유권을 둘러싼 정교한 법리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한 교수는 로마법을 완성된 정의의 모델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자유인과 노예, 남성과 여성 등 신분과 성별에 따라 개인에게 허용되는 삶의 범위가 달랐기 때문이다. 법은 약자를 지키는 방패이면서도 권력과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장치로 작용해 왔다. 한 교수는 그 안에 공존하는 권리와 차별, 자유와 억압의 역사를 함께 비춘다.
이러한 로마법의 한계는 오늘날의 사회와도 겹친다. 교회법과 로마법을 연구해 온 한 교수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가난과 교육 기회,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대물림된다. 인간을 인격체가 아닌 노동력이나 비용으로 바라보는 순간, 고대 노예제의 논리는 오늘날에도 되살아난다.
그는 법의 중심에 제도보다 인간을 놓는다. 법은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수단인 동시에 타인의 안녕과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범죄와 형벌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십자가형과 맹수형, 화형 등 로마 시대의 잔혹한 형벌을 짚으며, 잔혹한 범죄를 또 다른 잔혹함으로 응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범죄자에게 더 큰 고통을 가하는 것이 정의인지, 피해를 회복하고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의인지 묻는다.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를 위한’이라는 책의 부제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욕망을 실현할 자유를 뜻하지 않는다. 가난과 신분, 성별과 출신 때문에 삶의 가능성을 빼앗기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의미한다.
한 교수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남긴 “정의는 타인에게 있다”는 말을 책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얼굴을 가졌기에 평등하고, 서로 다른 얼굴을 가졌기에 다양하다”며 “로마법의 정신은 바로 그 다름 속에서 구현되는 평등의 질서를 되새기게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결국 타인을 향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황금률처럼, 정의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존엄과 삶을 함께 지키려는 책임인 셈이다.
“로마법 수업은 곧 인간학 수업입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더욱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투쟁이자 꿈입니다. 거대하고 휘황한 문명은 우리를 저마다의 인격과 이상을 지닌 인간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무수한 소비자이자 무지한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시키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단독하고 존엄한 인간일 것입니다.”(2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