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노엘 신부. 1981년 국내 최초 그룹홈 ‘엠마우스집’을 열어 시설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복지의 첫걸음을 놓았다. 가톨릭평화신문DB
국내 최초 그룹홈 만들고
공동체서 40여 년 함께 생활
장애인 노동 권리 찾아주고
이웃과 어우러지는 복지 개척
“사회적 약자는 현대 예언자들
예수님, 그들 가운데 현존하셔”
엠마우스 천노엘 신부 이야기 / 권은정 / 흐름출판사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지요.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실천하러 가는 것입니다.” (중략) “장애인들을 대할 때 불쌍한 사람이니까 도와준다는 태도로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합니다. 도와준다, 불쌍하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마십시오.”(128쪽)
‘발달장애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노엘(성골롬반외방선교회, 1932~2025) 신부 선종 1주기를 맞아 일대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바로 「엠마우스 천노엘 신부 이야기」. 갓 사제품을 받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사제가 1957년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한반도에 찾아와 70년을 사목한 이야기다.
천 신부의 본명은 패트릭 노엘 오닐(Patrick Noel O’Neill)이다. 그가 아일랜드 달간파크의 성골롬반신학교에 입학한 해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에 파견된 골롬반 선교사들의 잇단 비보를 접했다. 선배 사제들의 선종 소식에 그는 한국 선교의 꿈을 키웠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선교했던 토마스 퀸란(구인란) 몬시뇰을 신학교에서 만나면서 그 의지를 굳게 다졌다. 1956년 12월 사제품을 받은 그는 1년 뒤 우리나라에 도착했다. 한국어를 배우며 종이상자에서 집은 ‘천’ 자가 성씨가 됐다.
천 신부의 사제생활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25년은 본당 사목을 했고, 이후에는 발달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일했다. 광주대교구 장성본당과 여수 서교동본당, 목포 경동본당을 거쳐 광주 북동본당과 농성동본당 등에서 사목했던 신부는 바깥세상을 향한 보다 적극적인 교회 활동을 고심하며, 열악한 각종 수용시설에 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 등과 찾아가 봉사했다.
본격적으로 1980년 지적장애인을 위한 특수사목을 제안했고, 이후 안식년 9개월 동안 호주·뉴질랜드·미국·캐나다 등의 관련 시설을 방문했다. 이를 토대로 천 신부는 ‘외딴 지역 거대 시설’이 아닌 ‘시내 중심의 작은 집’을 기획하고, 광주 월산동에 위치한 일반 주택을 매입했다. 그렇게 1981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홈 ‘엠마우스집’이 문을 열었다. 국내에서 수용시설이 아닌 지역 사회 안에서 이웃과 어우러지는 복지 서비스를 개척한 것이다.
그러나 40여 년 전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복지는 지금보다 훨씬 미약했고, 교구 차원에서도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많은 차별 및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천 신부는 장애인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마당에 작업장을 설치하고 밀걸레·양초 만들기 등의 직업훈련 교육도 서서히 진행했다.
그룹홈으로 시작한 엠마우스 공동체는 이후 재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 사회 중심 서비스·복지관·조기교육센터·보호작업장·최중증발달장애인 활동센터 등으로 복지사업이 점점 확장되며 다양해졌고, 지금의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대표이사 윤근일 신부)에 이르렀다. 교회 안은 물론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올바른 방향과 가치관, 실천 방식을 선택해 나가는 데 초석과 나침반이 된 셈이다.
“우리 교회의 사명은 인류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고, 그 외침에 응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 오늘날의 현대적 예언자들입니다. 저는 엠마우스 공동체 친구들과 43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눈이 열렸고,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372쪽)
아일랜드에서 온 천 신부의 유해 일부는 담양 성직자 묘지에 안치돼 있다. 권은정(유스티나 루이제)씨가 엮은 책에선 청년일 때나 노년일 때나 늘 웃고 있는 천 신부의 해맑은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