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넘긴 노수녀가 오랜 연구·현장 조사로 쓴 서울 신앙 지도
한국 교회 첫 공동체 이벽의 집·공소 역할한 약국 등 되짚어
박해 시대 서울에서 성당과 공소 역할을 하던 곳과 교우들의 삶 / 서양자 수녀 / 순교의맥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서양자 수녀가 집필한 책이다. 신앙 선조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박해 시대’ 복음의 씨가 처음 뿌려졌고 교회와 선교의 중심이었던 서울의 모습, 그 안에서 형성된 신앙 공동체와 교우들의 삶을 기록했다. 여든을 넘긴 저자가 오랜 세월 연구하고,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주민들을 만나 수집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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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시대에도 서울에는 주교와 신부들이 항상 사목했고, 특히 비교적 교우가 많았던 중구 지역이 교회의 중심 역할을 했다. 지방의 교우들이 성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오는 경우도 있었고, 과부나 동정녀들은 고향에서 살기 어려워 서울로 올라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나 사제관에 모여 미사를 하면 즉시 알려지므로 사제들은 찾아오는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성사를 주었고, 주로 교우들의 집에 머물며 순회 사목을 했다. 그 사제가 숨어든 곳이 성당이 됐다.
“이 선생이 바로 주문모 신부였다. 강완숙의 집이 성당 역할을 하였으므로 첨례에 참석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강완숙의 가족 외에도 동정녀, 교우들이 와서 함께 살기도 했으므로 집이 넓어야 하므로 확장 공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43쪽)
그런가 하면 1784년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이벽(요한 세례자)·정약용(요한 사도)·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의 세례식이 치러진 수표교 이벽의 집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신앙공동체가 됐으며, 이후 명례방의 김범우(토마스), 아현동의 황사영(알렉시오), 벽동의 정광수(바르나바) 등의 집으로 확대된다. 이들 집이 공소 역할을 했던 셈이다. 저자는 또 교우들이 운영하는 번화가의 약국이 서로 만나 정보를 얻는 장소이자 때로는 공소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책은 주문모 신부부터 뮈텔 주교 등이 거처하며 본당 역할을 했던 사목지와 공소 역할을 했던 곳을 톺는다. 교우들의 직업과 신분, 그에 따른 시련과 박해를 살펴보고, 전체적인 조선의 시대상과 서울의 특징, 그 안에서 신앙이 전해지고 확산하는 과정과 의미를 되짚는다.
윤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