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교회에 복음이 전파된 뒤 서울은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비롯한 선교사와 교우들이 활동하는 사목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박해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성당도, 공소도 없었다. 사제가 숨어 지내던 교우의 집이 성당이 되고,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던 집은 공소가 됐다.
한국교회사와 중국교회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서양자 수녀(아가타·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펴낸 책은 박해 시대 서울의 사목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간 교우들의 삶을 복원한다. 천주교가 전파되고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과정을 구체적인 지명과 인물, 사료를 통해 따라간다.
책은 주문모 신부의 초기 사목지였던 ‘계동’과 ‘창동’을 시작으로 유방제(파치피코)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 중심지가 된 ‘후동’(현 중구 산림동·주교동),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사목했던 ‘돌우물골’ 등 성당 역할을 했던 곳을 차례로 다룬다. 당시 사제들이 어디에 머물며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했는지 짚으며 박해 속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본다.
공소 역할을 했던 교우들의 집도 추적한다.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집이 있던 ‘수표교’를 비롯해 김범우(토마스)가 지낸 ‘명례방’, 박순집(베드로)의 집이 있었던 ‘홍제원’ 등을 통해 평신도의 집이 교우들을 이어 주는 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을 보여 준다.

책은 사목 공간뿐 아니라 교우들이 어떤 신분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갔는지도 살핀다. 떡을 만들던 장인부터 화장품을 만들던 분장(粉匠), 활을 만들던 궁인, 갖바치와 낙죽장, 목장(木匠)까지 다양한 직업을 통해 박해 시대 신앙인들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한강변 교우들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였던 한강에 살던 교우들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기도 했다. 저자는 약 50년 전 밤섬 주민들을 직접 만나 성녀 김효임(골롬바)·김효주(아녜스) 등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한 경험도 책에 담았다.
책은 국법에 따른 공식적인 박해와는 별개로 마을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또 다른 박해도 짚는다. 대표적인 것이 ‘훼가출향(毁家出鄕)’이다.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의 집을 헐고 재산을 빼앗은 뒤 마을에서 내쫓는 방식으로 신자를 배척하던 일이었다.
저자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리브와 신부와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1860년 9월 3일 보낸 서한을 통해 그 참상을 전한다. “그 밖의 교우들도 특히 이 도(道)의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자기 마을에서 쫓겨났고, 집과 전답과 모든 생활필수품은 전부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데도 없고 몸 붙여 지낼 곳도 없이 극도로 처참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민간신앙과의 충돌도 당시 교우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대문에 부적을 붙이고 부락제·기우제·여제 등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에서 이를 거부한 교우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배척받기도 했다.
이처럼 삶의 터전을 잃은 교우들은 고향을 떠나거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박해 시대 교우촌이 외딴 산간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처럼 200여 년 전 사회의 풍속과 신분, 직업,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며 교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삶을 되살린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