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도 적정기술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과 시도는 꾸준하다. 문제의식만 있다면 적정기술을 활용해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기술은 전통 기술과 지혜를 신속하게 대체하면서 새로운 문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전 방법들이 훨씬 더 생태적이고 탄소 중립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적정기술이 필요한 이유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거나 밭갈이하지 않는 유기농사는 평균 12~15의 탄소 감소 효과가 있다. 음식물과 농업 잔재, 잡초 등 유기물을 발효해 퇴비로 활용하는 것도 대표적인 적정기술이다. 퇴비간이나 음식물 퇴비 장치, 생태 화장실은 자원을 순환시키고 토양의 영양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옛날 인분을 돈 주고 사고팔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할 때였지만,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거나 화학물질로 환경을 오염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농업은 밭에 플라스틱 비닐을 덮고 다양한 농약을 써서 단일 작물 혹은 유전자조작 작물을 재배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대규모로 생산하다 보니 오염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많은 공동체는 관행 농업 대신 유기적인 농사를 통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려고 애를 쓴다.
에너지와 관련한 적정기술은 비교적 빨리 국내에 소개되었다. 2006년경 산청의 민들레 공동체에서 다양한 에너지 자립 장치들을 통해 전기 없이 일주일을 살아보는 실험을 했고, EBS가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햇빛으로 음식물을 익히는 햇빛 조리기,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하여 저장하고, 축분을 발효시켜 나오는 가스로 음식물을 조리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적정기술에 대한 큰 관심을 일으켰다.
이 무렵부터 국내 여기저기서 풍력발전기, 로켓 난로, 태양열 난방기, 바이오디젤 등을 만드는 워크숍들이 열렸다. 지역의 많은 대안학교에서 적정기술을 수업 과목의 하나로 채택하고 실험했다. 심지어 경희대학교에서는 정식 교양과목으로도 채택되어 있다. 설명서나 구체적인 방법이 오픈 소스나 강연으로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기법의 전파속도가 빨랐다.
적극적으로 적정기술을 적용하는 에너지 자립 마을도 2010년 등장했다. 서울 동작구의 성대골 에너지 자립 마을이 그것이다. 영국의 전환 마을 모델을 좇은 은평 전환 마을 등도 있다. 에너지 프로슈머를 추구하는 시민들은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어 전기 생산자가 되었다. 화석연료 전기 대신 태양광 발전에 참여하고자 설립한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또는 자연에너지협동조합 등이 경기도에만 47개, 전국적으로는 최소 1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힘이 모여 5~6기가급 태양광발전소가 핵발전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고 공동체의 실천이 동력이 되면, 정부 기관이나 기업이 하지 못하는 기후위기 억제책을 시민들이 실제로 기여할 수 있다. 이렇듯 적정기술은, 멈출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 같은 산업 문명에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기술 철학이다.

글 _ 강신호 스테파노(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