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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교회와 함께 민족과 함께] (63) 「쇄신과 화해」, 한국교회 과거사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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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역사와 민족 앞에 200여 년 한국교회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참회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박정일 주교)는 12월 3일자로 한국교회의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를 발표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 신앙으로 결합된 형제자매로서,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함께 고백하고 참회한다’며 ‘이러한 참회를 바탕으로 자신을 쇄신하면서 민족과 화해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대열에 함께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더 나은 세상,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주교단과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의지 표현으로 평가된다.” (가톨릭신문 2000년 12월 3일 자 1면)
 

주교회의, 2000년 12월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 발표
7개 항목 걸쳐 포괄적 고백 담아…참된 용서 청원·쇄신 다짐

2000년 12월 3일,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을 기해 주교회의는 200여 년의 한국 교회사 안에서 교회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참회 문건인 「쇄신과 화해」를 반포했습니다. 이 문건은 한국 주교단 전체 명의로 발표됐고, 각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동시에 거행된 참회 예식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기억의 정화’

이처럼 한국교회가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보편교회가 추진한 ‘기억의 정화’라는 신학적 쇄신 운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4년 교황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발표했는데, 33항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는 자기 자녀들이 참회를 통하여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교황의 권고는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용서 청원 예식’을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교황은 종교재판과 폭력, 십자군 전쟁, 교회 분열, 유다인 박해, 여성 및 소수자 차별 등 7개 범주에 걸친 교회의 과오를 하느님과 인류 앞에 고백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식민 통치와 분단이라는 고유한 역사적 지평 안에서 자신의 역사적 과오를 성찰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부여받게 됐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일제 식민지 잔재 청산, 군부독재 시기 의문사 규명 등 과거사 진상 규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했습니다. 이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교회는 군사 독재 시절 인권 수호에 앞장서 양심의 보루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시기 일제의 군국주의 전쟁에 협력하고 신사참배를 수용하며 독립운동을 배척했던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었습니다.

특히 1909년 안중근(토마스)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살인 행위’로 규정하여 단죄했던 사건은 교회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역사적 멍에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 담론 형성에 소극적이었던 점, 그리고 급격한 교세 팽창 과정에서 나타난 성직자 권위주의와 중산층화 역시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었습니다.

포괄적 고백 양식으로 최종 결정

이 문건은 역사학계와 신학자들의 전문 연구, 그리고 주교단의 심의 과정에서 빚어진 신학적·정치적 긴장을 수렴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1999년 1월부터 참회 문건 작성의 필요성이 본격 제기됐고, 2000년 3월 교황청의 용서 청원 예식을 기점으로 작업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주교회의 역사신학위원회 산하 전문 소위원회가 마련한 초기 문서안은 역사적 실증주의에 기반해 과오의 주체와 구체적인 사건명을 가감 없이 명기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초안에는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 함대의 내항을 안내하거나 편승한 행위, 1801년 황사영 백서 사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종부성사 집전 금지 및 살인자 규정, 3·1운동 당시 신학생들의 참여 제재, 1930년대 후반 교황청 훈령을 방패 삼은 신사참배 적극 권유와 일제 전시 동원 체제 순응, 그리고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 및 역대 군사독재에 대한 보신주의적 침묵 등이 구체적인 고유명사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10월 추계 정기총회와 11월 9~10일 주교회의 임시총회에서 주교단은 초안을 전면 재검토하여, 구체적인 역사 사건명을 삭제하고 교황의 용서 청원 양식과 같은 7개 항목의 포괄적 고백 양식으로 문건을 재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수정된 전문이 11월 임시총회에서 통과되어 12월 3일 최종 공개된 것입니다.

「쇄신과 화해」, 무엇을 담았나

「쇄신과 화해」는 도입부에서 대희년의 의미와 제삼천년기를 맞이하는 교회의 정화 필요성을 밝힌 뒤, 본론에서 7개 항에 걸친 과오를 고백하고 결론부에서 참된 용서 청원과 미래 쇄신의 다짐을 천명했습니다.

7개 항 중에서 앞부분의 3개 항은 박해 시대와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한국전쟁까지를 역사 순으로 다뤘습니다. 1항과 2항은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수호를 구실로 외세에 의존하거나 일제 식민 통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족적 입장에서 독립운동에 나선 신자들을 단죄한 데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병인양요 당시의 외세 의존, 황사영 백서 사건, 안중근 의사 단죄 등이 그 구체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3항은 분단 상황 극복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에 투철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반성입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비극을 야기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상흔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 과정에서 복음의 메시지와 민족의 염원에 바탕을 둔 활동을 얼마나 충실히 펼쳤는가에 대한 성찰을 담았습니다.

4항부터는 분야별 성찰로 이어집니다. 4항은 사회 안에 상존하는 갈등 해소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 부족, 공동선 실현을 위한 노력이 미흡했음을 반성했습니다. 5항은 생명 경시 풍조에 맞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정 공동체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과오를 고백합니다. 6항은 봉사자로서의 교회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반성으로, 특히 성직자 중심의 권위주의와 외형적·양적 성장에 치우쳤던 풍조를 깊이 성찰했습니다. 마지막 7항은 다종교·다문화 사회인 우리나라 안에서 타 종교에 대한 충분한 존중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고백했습니다.

2000년 12월 3일 반포된 「쇄신과 화해」는 식민 통치 협력, 외세 의존, 분단 상황에 대한 침묵, 성직자 권위주의 등 200년 한국 천주교 역사 속 구조적 과오를 겸허하게 고백한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사건과 인명을 적시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자신의 과오를 공식 인정하고 ‘기억의 정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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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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