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형(다니엘, 62, 수원교구 광주본당) 작가가 시집 「육십갑자 오뚜기」를 펴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환갑을 넘기며 살아온 일상과 생각의 조각들을 130여 편에 담아냈다. 20대에 첫 시집 「오뚜기의 기도」를 펴내고 「바람타는 타조」 「겨울은 봄이 되기 위하여」 이후 25년 만에 출간하는 시집이다. 누구보다 아들의 책을 기다린 어머니(권화자 수산나, 86)를 위한 시집이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 초월읍 자택에서 만난 황 작가는 “어머니가 책을 왜 안 내느냐고 성화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소원을 풀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는 “네 시가 얼마나 좋은데, 책을 내야지”라며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참 잘 썼다”고 거들었다.
“아휴!” 어머니의 칭찬을 못 말리겠다는 듯 아들의 얼굴엔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휠체어에 앉아 천천히 한 마디씩 말을 이어나가던 황 작가는 “책 표지가 잘 나와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표지는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제 사진을 넣고 AI한테 오뚝이를 그려달라고 했어요. 오뚝이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상징하는 캐릭터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커피랑 무지개도 넣어달라 했죠. 요즘 AI가 대단하더라고요.”
무지개를 넣은 건 자신의 삶이 무지개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일곱 빛깔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룬 무지개를 보면 다들 좋아하잖아요. 저는 살면서 저를 좋아해 주시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뇌성마비 장애인 가운데 저는 복을 많이 받은 편이죠. 부모님께선 제가 하고 싶다는 건 다 해주셨으니까요.”
무지개의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 권씨는 “지형이 밑에 여동생 둘이 있는데, 딸 둘은 신경 쓸 틈이 없어 지금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삼육재활학교(초·중·고)를 졸업한 황 작가는 학교 다닐 때부터 국어와 역사, 사회 과목에 관심이 많았고, 글쓰기에도 재능을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다는 책이 있으면 전집으로 구해줬고, 글을 쓰겠다고 타자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종류별로 마련해줬다. 배우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아들의 휠체어를 끌고 어디든 찾아다녔다.
황 작가는 “고등학교 때 교지편집부를 만들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다”면서 “방통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KBS 방송아카데미 구성작가 과정을 수료한 뒤 KBS 제3라디오 구성 작가, 평화신문 명예기자로도 활동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하루 대부분은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전자책을 듣고 생각나는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손가락 하나조차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워 시가 떠오르면 활동 지원사에게 자신의 말을 글로 옮겨달라고 하고 있다.
이번 시집 가운데 자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삐뚤어진 십자가’를 꼽았다. 여동생이 어느 날 십자가를 흙으로 빚어 구워줬는데 기울기가 맞지 않아 비뚤어진 십자가였다. 여동생은 “오빠의 기울어진 고개를 닮았다”며 건네줬는데 그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해 십자가를 외면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그것 역시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 나를 불량품 취급하나 싶어 서운한 마음 / ⋯ 그분이 달리신 십자가는 반듯했을까? / ⋯ 곧게 생겼다고 전부 옳고 / 삐뚤어지고 휘어졌다고 전부 그른 것 아니다.”(‘삐뚤어진 십자가’ 중에서)
“제 모습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이 정도로 사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죠. 사실 날마다 힘들고 괴롭긴 해요. 환갑이 넘으니 몸의 강직도 심해져 먹어야 하는 약도 늘었고 잠도 잘 못 자고요. 매번 욕창으로 고생해요. 그래도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더 처져요. 늘 긍정적으로 살려고 해요.”
그가 삶의 모토로 삼는 말씀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1테살 5,16)다. 삶을 지탱해온 가장 큰 힘은 신앙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외국인 선교사가 해 준 “Jesus loves you”(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는 말도 늘 새기고 있다.
그에게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물었다. “달리고 싶어요. 휠체어든 자동차든 뭐든 타고 쌩쌩요. 얼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너무 좋거든요. 제가 사실 스피드광이어서 휠체어 사고도 몇 번 냈어요. 그때마다 주님이 절 잡아당겨 살려주셨고요. (웃음)”
황 작가는 이번 시집을 통해 장애가 있어도 삶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그는 고통 중에도 언제나 빛나는 62년을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