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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상담소가 된 동네 할머니들의 ‘우정 벤치’

정신과 의사인 저자, 훈련 받은 어르신들과 상담 프로그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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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들어 주는 벤치 / 딕슨 치반다 / 주민아 옮김 / 판미동
 


독서의 계절 가을은 일조량이 줄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이가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시적이면 좋으련만 마음의 문제나 일상의 어려움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주위에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마음을 들어주는 벤치」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라 평범한 할머니들이 상담가로 나선 이야기다. 차비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20대 환자를 생각하며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고안한 ‘우정 벤치(Friendship Bench)’ 프로그램이 핵심이다. 2006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14명의 할머니와 함께 시작했다. 상담 훈련을 받은 할머니들이 마을의 나무 벤치에서 내담자의 고민을 듣고, 스스로 삶의 문제를 풀어 가도록 돕는 것이다.

동네 할머니들은 서구 정신의학의 낯선 용어로 판단하는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답을 주기보다는 함께 길을 찾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의 지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현지에서 오래 살아온 연장자로서 경험은 물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지 관계망을 총동원한다.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문제 해결 치료법(PST)은 너무 기계적이에요! (중략) 오히려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하는 거죠. ‘나는 당신 편이다. 뭐든 당신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줄 수 있겠느냐?’ 하고요.”(203쪽)

“우리는 저마다의 슬픔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외딴 섬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군도(群島)이며, 우리 안에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 쓰일 날을 기다리는 수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다.”(311쪽)

저자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부유한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특히 노년 인구의 자살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우려하며 “공동체 안에 이미 존재하는 어르신들이 우리의 소중한 자산임을 인식하고, 기꺼이 서로 마주 앉아, 혹은 나란히 앉아 가슴속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줄 ‘한국식 우정 벤치’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저자는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과 짐바브웨대학교에서 정신의학 및 국제 정신보건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3000여 명의 할머니와 ‘우정 벤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그 효과를 입증한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게재됐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목하는 정신건강 모델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윤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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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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