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주교 출판사 /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 / 가톨릭출판사
“뜻을 이해하며 기도를 바치는 것은 교리서와 같은 천주교 서적을 읽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거룩한 기도문을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번역하여 누구나 쉽게 바칠 수 있도록 한 시도의 결과는 놀라웠다. 신자들은 한글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한글의 위상도 높아졌으며, 그 결과 교세도 더욱 확장되었다. 앵베르 주교는 1838년 11월 24일 자 서한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지도부에 보고하면서 한글 기도서가 조선 교회의 신자 수 증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194쪽)
우리나라의 가톨릭은 세계 교회사에서 보기 드물게 지식인들의 신앙 탐구로 시작됐다. 그 복음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개체가 바로 ‘책’이다. 중국에서 유입된 한문서학서를 탐독했고, 초기 신자들은 한문으로 된 교리서와 기도서를 직접 옮겨 적었으며, 더 많은 이가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했다. 조선의 신앙은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수도 한양에서 지방 곳곳으로 전해지며 하나의 교회를 이룬 것이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당시 책을 만들고 번역하고 베껴 쓰고 유통하던 사람들, 인쇄소를 세우고 운영하던 이들, 그리고 한글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이다. 목숨을 걸어야 했던 문서 선교의 역사를 통해 한국교회사를 톺는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한문서학서의 조선 유입부터 지식인들의 서학서 이해와 유포 과정, 천주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주체, 필사본으로 서적을 제작하고 보급한 경로 등을 살펴본다. 이어 베르뇌 주교의 목판 인쇄소와 리델 주교의 성서 활판소 설립 과정과 이를 운영한 인물 및 운영 방식 등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2부에서는 조선 천주교 서적 출판 과정에서 한글이 공식 언어로 채택된 흐름, 초기 신자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글 번역 과정을 중점적으로 서술한다. 최초의 한국어-외국어 사전 「한불자전」, 프랑스어판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등 프랑스 선교사들의 책도 조망했다.
“베르뇌 주교는 서적의 대량 생산을 위해 조선대목구 공식 목판 인쇄소 설립을 추진했다. (중략) 헌종 4년 무렵에 조선 조정은 천주교 서적이 유입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천주교 서적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조선 내에서 직접 책을 생산하기로 하고, 인쇄소를 설립하여 대량으로 보급하고자 했다.”(109쪽)
조선대목구 목판 인쇄소가 한창 가동 중일 때 병인박해(1866년)를 겪는다. 베르뇌·다블뤼 주교 등 수많은 프랑스 선교사가 순교했고, 천주교 서적들은 압수돼 불태워졌으며, 목판 인쇄소도 소멸된다. 이후 조선교회 재건 과정에서 천주교 서적의 보급과 유통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며 인쇄소 설립이 재추진된다.
조선대목구는 1881년 11월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성서 활판소를 마련한다. 최신 설비와 기술을 갖추고 활판본으로 교리서와 기도서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 가톨릭출판사의 뿌리다(그 기원을 1861년 조선대목구 공식 목판 인쇄소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 위치했던 활판소는 4년 뒤 갑신정변으로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며 서울 정동으로 이전한다. 올해 창립 145주년을 맞아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가 「조선 천주교 출판사」를 집필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를 바라본다”며 “신앙의 선조들을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 분들로 기억하게 해 주며,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한글의 기틀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진 과정도 함께 깨닫게 해 준다"고 말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