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말 / 미셀 앙리 / 김동규 옮김 / 이학사
인간의 언어 형태를 띤 그리스도의 말은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겨질까? 우리가 그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20세기 프랑스 철학과 현상학을 대표하는 저자는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들을 따라가며 인간의 말과 어떻게 다른지, 인간이 그 ‘말씀’을 어떻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지 철학적·신학적으로 탐구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흔히 사랑·용서·선행을 권하는 보편적인 윤리로 이해되지만, 인간의 지혜나 도덕의 차원을 넘어서는 부분도 많다. 삶의 질서를 뒤집어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성경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기에 그리스도의 말 역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다. 인간의 잣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아들은 아버지와, 딸은 어머니와 ⋯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분열은 (중략) 원리상 오직 한 분의 ‘아버지’만을 인정하는 이 질서에서는 모든 인간이 그의 자녀가 되며, 이 새로운 질서 안에 존립하는 유일한 실재적 관계는 모든 구별, 분리, 대립을 배제한 형제자매의 관계뿐이다.”(66쪽)
존재들 간의 모든 관계를 전복시키는 이 말씀은 생명의 차원에서 새로운 역설을 불러온다. 인간을 더 선하게 개선하려는 권고가 아니라 인간 자신을 모든 관계의 중심과 근거로 삼는 인간의 체계를 해체하는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이 인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있는 절대적 생명으로부터 끊임없이 부여받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선언을 무조건적인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 정당화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되는지 철학적으로 해명한다. 이 책은 「내가 진리다」 및 「육화」와 더불어 현상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용한 저자의 유작이다.
윤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