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가득 찬` 시대에 윤호병(빈첸시오, 60, 추계예술대 교수) 시인이 `신앙에 무겁게 침잠하며` 사도 바오로의 내밀한 말씀을 그린 시집을 냈다.
가톨릭적 색채가 짙은 전작시집 「브람스가 보내온 비엔나 숲 속의 편지」에 이어 2년 만에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의 해`에 묶어낸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읽는 밤」이다.
시집은 말씀 속에서 `주님`을 향해 기도하며 질곡에 찬 현실을 넘어 신성을 회복하고 영혼의 자유를 갈구하는 `구도의 시`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성경 말씀이 그대로 시 구절로 들어와 시와 한 몸을 이루기도 하고, 시인 자신의 일상과 체험이 성경 말씀에 녹아들어 시적 의미로 형상화된다.
`엠마오로 가는 길`을 통해 시인은 노래한다.
"그 길 바로 그 길 위에 오랫동안 서 있었지만//올 해 첫 달 마지막 날 제 마음속으로/검은 먹구름 쏟아져 내려 쌓이고 쌓이던/그 시각부터 바로 이때 이 순간까지/만날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기대, 기대의 끈/애써 붙잡고 기다렸지만 기다리고 있었지만/아무도 오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는/클레오파스와 말벗하며 가고 있던 길동무도 없었고/기다리는 소식은 들을 수도 없었고 들려오지도 않았지요…"
시인은 이 시에서 주님을 뵙고 말리라는, 그래서 사도 바오로처럼 "눈꺼풀 벗겨져" 영혼의 눈을 뜨고 말겠다는 기다림을 기록한다.
부활시기를 맞아 선보인 시편 45편은 믿음과 기다림, 말씀의 실천에 대한 신앙적 의지가 배어 있다. 인습적이고 관성적인 믿음, 자신의 위안을 위한 믿음, 베풂마저 자신의 충족을 위해 실행하는 믿음에 대한 치열한 고백과 반성이다. 더불어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상`에서 종교와 종교인의 바른 지향을 담아내려 한다. 남의 얘기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화상이다. `조금만이라도 주님을 닮아보려 애쓰는` 시인은 영혼의 화학반응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린다.(푸른사상/1만2000원)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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