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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14쪽)
최근 암투병을 하며 월간 샘터에 30년 이상 소설 `가족`을 연재해오던 소설가 최인호(베드로)씨가 펜을 내려놨다. 1975년부터 그의 가족과 이웃에 관한 글을 기록한 일기같은 글이다.
그런 그가 「인연」이란 에세이로 독자 곁에 찾아왔다. `가족`에는 소소한 이웃의 일상이 담겼다면 「인연」에는 삶을 지탱해 준 고마운 것들을 담았다. 그는 유년기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생을 돌아보니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인연들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이며, 이 섭리는 인연이라고….
떨어진 운동화를 질질 끌고 돌멩이를 툭툭 차며 걸었던 어린 날의 고독한 하굣길. 1967년 훈련병 시절 눈 내린 연병장에서 기합을 받다가 신춘문예 당선 전보를 받았던 기쁘고도 시린 추억. 눈 내린 마당을 원고지의 무수한 공백으로 바라보며, 눈 감을 때까지 막막한 백지와의 인연을 이어가겠다고 했던 겨울. 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이라는 기적. 거리의 꽃과 성경 한 구절…. 그리고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이해인 수녀.
그의 인연은 43편 산문으로 다시 태어나 독자들과 인연을 맺는다. 사람과 꽃, 수십 년간 입어온 옷과 신발, 삶을 차지하는 모든 것이다. 그는 이 인연들로 한 사람의 생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든 결코 하찮을 수 없다고 한다. 인연은 우리 삶을 어떤 지점으로 인도하는 등대이며, 생애를 증명하는 이력이자 추억의 총체라고 말한다.
그의 생에 속에 빛나는 인연의 이야기에 가슴이 따뜻해지다 먹먹해지다를 반복한다.
그는 군 복무시절, 찬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며 다짐한 시간들을 꺼내보였다.
"내가 쓴 보잘것없는 글들이 가난한 세상에 작은 위로의 눈발이 될 수 있도록, 그 누군가의 헐벗은 이불 속 한 점 온기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저 눈 내린 백지 위를 걸어갈 것이다."(랜덤하우스/1만2000원)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