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설계하지 못하는 젊은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애달파하는 노인. 더 많은 수익과 더 나은 경제적 상황을 약속하는 감언이설….
가득 차 있는데 덜 채워진 것 같고 바쁜데 지루하고, 함께하는데 외롭다면 `영성의 대가` 안셀름 그륀(Anselm Grun, 성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를 만나보자.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륀 신부가 영성에 메마른 현대인들을 위한 영적 선물 「위기는 선물이다」(김선태 신부 옮김)를 내놨다. 어떤 이유로든 삶의 위기에 흔들리는 이들에게 용감히 맞서라고 응원하는 책이다. 경제와 정치를 신뢰하는 이들에게 세계 금융위기는 "삶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위태로운 확신을 남겼고, 금융위기 여파는 가정경제에 고통이라는 큰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사람들은 위기를 인식한 순간 미래를 두렵게 여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하며 어떤 의미로는 적절한 기준을 잃어버렸다"(본문 8쪽).
그륀 신부는 경제 제일주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과 무절제, 불신을 지적한다. 경제 위기뿐 아니라 살아있다면 만나야 할 모든 위기 앞에서 "그대 능력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능력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잠재된 성령의 힘을 신뢰하라는 뜻이다.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는 마음이 능력이라는 말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을 연구한 그륀 신부는 사춘기ㆍ중년의 위기, 은퇴ㆍ실직ㆍ질병ㆍ관계ㆍ신앙의 위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위기를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공포에 사로잡히지 말고, 불안과 걱정에 대해 스스럼없이 생각하며 오히려 친밀해지라고 조언한다. 또 자신의 딱한 처지와 무기력에 대해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느끼라고 말한다.
그륀 신부는 지금까지 펴낸 300여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위기에 흔들리는 현대인들에게 마음 평안을 선물해왔다. 저서 중 「아래로부터의 영성」 「참 소중한 나」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황혼의 미학」 등 50여 권이 넘는 책이 우리말로 번역ㆍ출간돼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는 중년에게는 나이 드는 기술을, 노인에게는 "죽음을 하느님의 영원 안에서 의미심장한 목표로 여겨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불안과 허탈로 무기력해진 직장인들에게 새로운 영적 샘물을 공급한다. 경영인들에겐 직원의 가능성을 꺼내 그의 삶에 활기를 넣어 주라고 말해왔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한국 신자들에게 왜 사랑받는 영성가가 됐을까.
그륀 신부의 저서를 번역해온 김선태(전주교구 화산동본당 주임) 신부는 "깊은 영성을 지닌 영성의 대가들이 많지만 그륀 신부가 독자들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 내면의 문제를 잘 분석하고 상처를 잘 헤아리기 때문이다"며 "상처 원인을 분석할 뿐 아니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에 더 사랑받는 영성가가 됐다"고 진단했다.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 신부는 성경과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과 융의 분석심리학을 공부한 신학박사다. 20년 넘게 수도원 재정관리자로 지냈다. 또 독일 최고 경영자들의 영적 고문으로 독일 여러 기업체 경영 책임도 맡고 있다.(바오로딸/9000원)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