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교회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교수가 자신의 삶과 신앙, 예술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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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무대 뒤에 숨어 가슴을 죄는 연출가다. 조각가는 엄마 마음으로 돌을 두드리고 흙을 도려내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면 예술은 진리의 꽃을 피운다. 생명이 숨 쉰다.
소박하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한국 성모상으로 유명한 한국교회 원로 조각가 최종태(요셉, 80) 서울대 명예교수가 예술가로서 삶과 신앙을 녹여낸 자서전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바오로딸/8500원)을 펴냈다.
1958년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 해에 세례를 받은 그는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많은 성당과 성지에 성상(聖像)을 만들어 세웠다.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한국가톨릭미술협회 회장을 지내며 가톨릭 미술인들과 함께 종교미술을 향한 묵묵한 걸음을 내디뎠다. 서양 현대미술의 물살에도 한국 성미술 토착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성상은 누구를 위해 만드는 것인가. 나를 위해 만드는 것인가. 주임신부를 위해 만드는 것인가. 교회를 위해 만드는 것인가. 미(美)에의 봉사인가."(본문 163쪽)
최 교수는 성상을 제작하는 일은 하느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라고 고백한다. 아름다움은 하느님께 속해 있으며, 인간은 아름다움을 찾아 형상으로 만들어 다시 하느님께 바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삶은 종교와 예술을 향한 탐색의 연속이었다. 그가 찾는 것은 맑고 따뜻하고 밝은, 곧 선함과 참됨과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골고타에서 쓰러지는 고통스런 장면을 그려내면서도 기쁨과 환희에 가득찼다. 진리의 빛을 마주한 예술가의 투혼이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메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중략) 성모님의 슬픔, 그리고 무덤에 묻힌다는 참혹한 현장을 지금 만들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즐거우냐, 이게 웬일이냐?"(본문 154쪽)
자서전에는 예술을 통한 구도의 길에서 홀로 사색하고 고민한 작품 같은 삶이 녹아 있다. 책은 `내 인생의 고비`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빛을 찾아` 등 3장으로 나눠 퍼즐 같은 삶을 신앙으로 이어 붙였다. 또 한국 교회미술이 바로 서는 데 장익(전 춘천교구장) 주교의 헌신적 노력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특별한 사랑이 있었음을 털어놨다. 유년 시절, 딸을 시집보낸 일, 술과 담배의 인생 등 `인간 최종태`의 삶도 담았다.
예술하는 것보다 삶을 살아내는 게 더 어렵다는 그의 머리 위로 세월의 두께만큼 서릿발이 내렸다. 서로 떨어져 있던 종교와 예술이 손을 잡았지만 그는 하느님 뜻에 물음표를 찍는다.
"아기의 웃음소리가 천상 소식으로 들린 때가 있었다. 그 웃음소리는 티 없이 맑고 금방 돋아나는 새순 같은 것이었다. 이제 앎의 욕구를 포기하려 한다. 그리하여 아기처럼 온전한 믿음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분 안에 있고 그분은 내 안에 있다."(책머리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