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스며드는 빛」에 담긴 시들은 내면은 말할 것도 없고 삶의 방식까지 온전히 절대자에게 맞춰져 있는 어느 수도자가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력이 있다.
시어들은 소박하면서도 솜씨 좋은 여인이 차려낸 음식처럼 정갈하다. 그러면서도 시어와 시어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는 부드러운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네/ 말이 없어도 임과 살 수 있느니/ 임은 내게 잊으라 하네/ 내가 나임을// 원형(原形)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원하네"(`또다시 동굴에서`)
류진미(스텔라, 47) 시인은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길 갈구한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사막의 동굴을 찾아 들어간 수도승들만큼이나 그 바람이 간절하다. 그래서 여름날 태양 아래 수줍은 꽃처럼, 산들바람 사이로 거니는 연인처럼 부르는 님의 목소리(`부르셨습니까`)에 끌려 감각의 귀를 닫고 침묵으로 걸어 들어간다(`동굴Ⅱ`).
하지만 성찰과 회개 없이 어떻게 그분을 만날 수 있으랴. 그래서 낮은 자세로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 빛을 기다린다.
"삶을 펼쳐 보이면 어둠도 빛도 날개가 됩니다/ 밤이 옵니다/ 빛은 당신한테서 오고/ 어둠은 제 안에 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 때 빛은 탄성을 울립니다"(`빛의 날개`)

▲ 시집 「스며드는 빛」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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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와 신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세상에서 신앙시를 쓴다. "시는 죽었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꼿꼿이 중심을 잡고 시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싶어 한다.
시인은 "하느님 만남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며 "그 가슴 벅찬 기쁨과 사랑을 엮어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강물처럼 흘려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수지본당 사무장으로 일하는 시인은 "교회 안에서 일하는 걸 기쁨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