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9,5)
영화의 주인공 ‘구스’는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소년이다. 그는 성탄절 이브 아침 부모님으로부터 성탄 선물로 강아지를 받고 기뻐하지만, 하필 그날 부모님이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다. 1년 후 다시 성탄절 이브 아침에 구스는 물건을 팔러 ‘프랭크’에게 갔다가 강아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강아지를 찾으러 다니다가 ‘안토니’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런데 안토니는 어딘가 이상하다.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 하고, 이상한 말만 늘어놓는데, 구스는 그를 무시한다. 구스는 안토니가 강아지를 데려갔을지도 모른다는 프랭크의 의심을 듣자 함께 안토니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안토니가 프랭크의 손을 만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프랭크의 과거를 단번에 알게 되고, 프랭크가 잃어버린 물건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준다.
그때부터 세 사람은 프랭크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가는데, 이상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클라렌스 박사의 편지, 프랭크의 책, 인도 할머니의 팔찌 등.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서로의 불행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스가 아버지의 자동차 키를 숨겼다가 차 사고가 난 것과 프랭크가 죄책감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된 것, 헨리 부부가 딸 밀리의 죽음 이후 그 슬픔에 젖어 사는 것.
사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아주 잘 만들어진 그런 부류는 아니다. 한국 영화로 따지면 독립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의 가치는 판타지적인 접근이지만 서로의 불행을 함께 이겨내고 다시 행복해지려는 데 있다.
이 모든 것은 주인공 구스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불행에 잠식되어 세상과 사회를 탓하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10·29 참사 이후 반복되는 국가 재난 앞에서 불안함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깊게 자리한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더 안전하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대림 시기를 보내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 머물던 이들에게 아기 예수님은 희망의 빛이시라는 것. 지금 나도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그분 안에 머물고, 그 빛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마치 주인공 구스의 이타적인 선택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화해와 나눔 안에서 모두가 따뜻하고 기쁘게 이번 성탄을 맞이하길 바란다.
조용준
신부(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