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당시에는 나만의 감정이 중요하고 거기에 몰입해 있어서, 혹은 너무 어려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보일 때가 있다. 영화 ‘애프터썬’은 11살의 ‘소피’가 그때는 보지 못했던 아빠 ‘캘럼’에 대해 보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되면 캠코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영상을 찍는 어린 소피와 그 영상에 담긴 젊은 아빠가 보인다. 소피가 찍었던, 20여 년 전 튀르키예로 떠났던 아빠와의 여행 기록이다. 그 영상을 통해 관객은 20여 년 전의 튀르키예로 함께 떠난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이혼한 상태였고, 소피는 다시없을 추억을 만들기 위해 아빠와 함께 튀르키예로 휴가를 떠났다.
아빠는 런던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소피는 아빠가 왜 자기와 가족이 있는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낯선 런던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때때로 알 수 없는 아빠의 표정들과 행동들은 11살의 소피에게 지금까지 보던 아빠와 어딘지 다르게 느껴진다.
호기심 많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소피는 휴가지에서 즐겁게 지내려 애쓴다. 소피와 달리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는 듯 보이는, 막 30대가 된 아빠의 감정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소피가 설레는 첫 키스를 한 날, 캘럼은 어둠이 일렁이는 파도 속으로 들어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환상인지 모르게 표현된다. 파편적이고, 애매한 장면들을 감독은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장면은 소피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고, 당시 11살의 소피는 자신의 아빠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완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태양 아래 휴가지에서 보낸 즐거운 추억 여행으로 시작된 ‘애프터썬’은 막바지로 치달으며 불길한 슬픔을 예감하게 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소피는 아빠 꿈을 꾸다가 잠을 깨서 캠코더를 떠올리고 영상을 틀어본다. 그 속에는 아빠가 찍은 어릴 적 소피가 들어 있다. 이제 관객은, 소피의 입장에서 캘럼을 바라봤던 처음과 달리, 소피와 함께 캠코더를 되돌리며 기억을 복기한다. 그리고 소피에 대한 캘럼의 사랑을 확인한다. 소피는 선연하게 남아 있는 그해 여름을 되새기며 꿈속에서 혼자 마지막 춤을 추고 있는 아빠를 안아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아빠는 소피와 같은 나이이거나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제목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이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태양(Sun)은 ‘부성(父性)’을 상징할 것이다. 모든 것은 태양을 통해 살아나고, 성장하고, 죽는다. 그렇다면 태양이 지고 난 후에는 무엇이 올까? 태양이 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걸까? 영화 속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태양은 졌다. 그러나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낮에 받았던 태양의 기운으로 밤을 이겨낸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예레 31,3)
2월 1일 극장 개봉
서빈 미카엘라(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