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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19) 레테 강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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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지 않고 제게 남아있는 피는

한 방울도 없습니다. 옛 불꽃의 표징들을 나는 압니다.”

나는 베르길리우스께 말하려 하였는데,

베르길리우스는 우리들을 남겨두고

떠나가셨다.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베르길리우스,

내 구원을 위해 나를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연옥 30, 46-51)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4,23)에서, 디도가 아이네이스를 그리워하며 하는 말을 인용함으로써 물러가는 사부에 대한 작별 인사를 대신한다. 특히 49-51행에서 사부의 이름이 3번 반복됨으로써 원문의 46행과 55행과 함께 1+3+1을 구성한다. 이 삼행 안에서의 베르길리우스에 대한 삼위일체적 작별은, 사부가 ‘농경시’에서 묘사한 저승으로 다시 돌아가버린 유리디체를 세 번 애타게 부르는 오르페우스의 메아리이기도 하다.



단테여, 베르길리우스가 떠났다고

아직은 울지 마오, 아직은 울지 마오.

다른 칼로 울어야 할 테니까.

(연옥 30, 55-57)



베아트리체의 말은 칼에 비유된다. 간접적으로 천사들에게 향하던 그녀의 칼끝은 이제 직접 단테에게 향한다.(연옥 31,2-3) 이것이 「신곡」 전체에서 단테의 이름이 단 한 번 ‘어쩔 수 없이 호명된’ 이유다. 베아트리체는 아들을 꾸짖는 어머니의 엄격함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과거 십 년간의 단테의 행실을 질책한다. 그러자 곧바로 천사들이 “주님, 당신께 희망을 두었으니”(시편31,2)를 노래하며 중재에 나선다. 단테는 시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터져나오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내 가슴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얼음은

한숨과 눈물이 되었고,

고통과 함께 입과 눈으로 터져 나왔다.

(연옥 30, 97-99)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때, 그의 안에서 터져 나왔던 눈물의 소나기를 연상시킨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은 후 “옳지 않은 길로 걸음을 옮겼고, 어떤 약속도 채워주지 못하는, 그릇된 선의 모습을 뒤쫓았다.”(연옥 30,130-132) 여기서 단테는 낙원에서 추방된 인류를 대표한다. 베아트리체는 말한다.



그는 너무나도 아래로 떨어졌기에, 그에게

멸망한 백성들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어떤 수단도 그의 구원에 미치지 못했지요.

(연옥 30, 136-138)



단테의 마음의 통회는 “튼튼한 참나무가 뿌리 뽑히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연옥 31, 71-72) 결국 단테는 “죄의식이 가슴을 짓눌러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동 31, 85-89).

단테가 의식을 되찾자, 마텔다는 단테를 목까지 강물 속에 잠기게 한 다음, 축복받은 기슭으로 데려간다. 기슭에서는 “히솝의 채로 내게 뿌려주소서. 나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나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시편 51,9)라는 아주 달콤한 노래가 들려왔다.

마텔다는 팔로 단테의 머리를 껴안고 물속에 넣는다. 단테는 레테 강물을 마시면서 악에 물든 슬픈 기억들을 모두 지운다. 마텔다는 깨끗해진 단테를 꺼내 춤추는 네 여인들 가운데로 데려간다. 그녀들은 모두 단테를 팔로 감싸준다. 이는 단테에게 사랑으로 주입된 사추덕(四樞德)의 관을 씌워주는 것이다.

그녀들은 베아트리체의 시녀들로 단테를 하느님의 지혜인 베아트리체 앞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베아트리체의 눈은 그리스도인 그리프스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는 그리프스가 신성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인성을 상징하는 사자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지금 계시를 실연(實演)하고 있다. 하느님의 지혜인 그녀는 거울(지혜 7,26)이 되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깊은 신비의 하나를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 위격(persona) 안에 두 본성(natura)을 가지신 분이다. 이 신비는 천국 편 끝(33,127-145)에서 최종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 그때 대신덕(對神德)을 나타내는 다른 세 여인이 천사의 노래에 맞추어 춤추면서 앞으로 나온다.



그들의 노래는 이러하였다. “베아트리체여, 눈길을 돌려요.

그대를 보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그대의 충실한 자에게 눈길을 돌려요!

바라건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오.

그에게 그대 입술을 보여주어, 그대가

감추는 둘째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오.” (연옥 31, 133-138)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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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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