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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3. 최창무 대주교(9·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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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풀어져 맛을 내 주고 할 바를 다 하게 됩니다. 나침반은 언제 어디에 두어도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해바라기처럼(네메세기 신부) 주님께서 계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60여 년 사제로서 한 길을 걸어온 저는 사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요? 하느님 사랑 안에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편해서 그것만 했거든요. 갖가지 소임을 주신 것은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그때그때 가르치며 쓰시느라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교로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도 나는 교회의 ‘쓰레기통’이 기꺼이 되고, 그 안에서 열심히 분리수거하며 교회가 빛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하느님을 담고 있기에 하느님을 닮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는 소리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야 합니다. 말씀이 담기지 않은 소리는 헛소리가 됩니다. 그렇게 소리의 힘을 잃어버리면 사람들이 교회 안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소 많은 분들이 제 모든 말은 ‘말씀’에서 시작해 ‘말씀’으로 끝난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인터뷰는 저에게도 지난 삶을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이 됐는데요. 새삼 더욱 절감되는 것이 있더군요. 제 온 삶이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지난 모든 삶은 크게는 이 말씀의 뜻이 더욱 확장되는 시간이었다 생각합니다.

제가 이 세상에 나기 전부터 저에게는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성소라고 하지요.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가장 먼저 부모님께 배웠습니다. ‘사주구령’(事主救靈·하느님을 섬기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 ‘위주치명’(爲主致命·하느님을 위하여 죽기에 이름). 오로지 그 말씀을 새기며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 학문적, 인간적, 수덕적 삶을 배우면서 사주구령·위주치명을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은 사제가 되는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제가 되자 진정 저의 삶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어 점점 더 깊이 ‘영광일랑 오직 당신 이름에 돌려주소서’라는 말씀과 같이 기도하게 됐습니다. “마시옵소서 주여, 우리에게는 마시옵소서, 영광일랑 당신의 사랑과 진실로 말미암은, 영광일랑 오직 당신 이름에 돌려주소서.”(시편 113,1 최민순 신부 역/ 115,1) ‘Non nobis Domine, non nobis.’ 매주일 저녁기도 때 바치는 이 기도, 저희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뜻의 이 구절이 더욱 깊이 새겨졌습니다. 사제직은 누군가에게 군림하라고 불리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라 불리운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단 한 순간도 이 길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갈등한 적은 있어도 단 한 순간도 잘못 든 길이라 생각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제서품 성구도 ‘저를 차지하사 온전히 당신 것으로 삼으소서’로 정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 또한 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교로서 사목표어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로 선택했습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사람을 통해 우리의 역사 안에서 계속 함께하신다는 것(임마누엘)을 널리 선포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광주대교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광주는 빛고을이라 하니 참빛이 교회를 통해 비치길 소망하며 ‘말씀은 생명의 빛’이라는 사목표어를 새겼습니다. 말씀에서 생명이 주어졌고 또 그 말씀은 생명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여러분, 부르심이 자신의 것이 되려면 응답해야 합니다. 밭에 묻힌 보화를 갖기 위해 온 재산을 털어 그 밭을 사듯이(마태 13,44 참조) 내 모든 것을 내놓고 응답해야 합니다. 저 또한 자격은 없지만 부르심이 있기에 자격을 얻었으니, 천만 번이라도 빌고 노력합니다. 세상 끝날 주님께서 저에게 ‘날 닮았다’(성가 ‘임쓰신 가시관’·하한주 신부 詩) 하시며 저를 안아주시길요.

여러분, 누구든 그 안에 보화를 품고 태어납니다. 왜냐고요?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으니까요, 하느님을 닮은 얼이 담겨 있으니까요. 특히 세례를 받으면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온 생을 다 해서 그 보화를 찾고 실천하는 것은 사제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명, 부르심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티모 4,7)라는 말씀이 이뤄질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활동을 접더라도 ‘여러분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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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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