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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난 사순] (1) 서울 새남터순교성지- 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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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주님 부활 대축일의 기쁨을 온전하게 맞이하기 위해 가톨릭신자들은 40일간 인내와 절제, 극기의 시간을 보낸다.
사순 시기를 은혜롭게 보내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목숨까지 바쳐 가며 신앙을 지킨 선조들의 역사가 남아 있는 성지를 찾아 신앙 선조들의 신앙을 따라가고자 다짐하는 것도 더없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사순 제1주일을 앞두고 서울 새남터순교성지를 찾았다.


새남터순교성지에서 본 첨례표

서울 한강변에 있는 새남터는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이면서 국사범을 포함한 중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시작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고,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 등 4대 박해를 거치며 성직자 11명과 평신도 3명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새남터순교성지가 한국 신자들에게 각별한 이유는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병오박해 때 순교한 곳이 새남터이기 때문이다. 새남터순교성지 건물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순교한 곳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졌다. 새남터본당(주임 백남일 요셉 신부) 사목도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에서 담당하고 있다.

사순 시기에 새남터순교성지를 바라보면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이 전해지면서 1년 중 사순 시기만큼은 보다 더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마음이 움직인다. 새남터순교성지 안으로 들어가 내부에 전시된 한국교회 초창기 유물들을 살펴보면 특별한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옆으로 긴 직사각형 모양의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색바랜 문헌이다. 유물 설명에는 ‘병인년 첨례표’(丙寅年 瞻禮表)라는 명칭 아래 ‘기념해야 할 대축일, 축일, 기념일 등을 날짜 순으로 기록한 표’라고 적혀 있다. 조선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축일표를 첨례표라고 불러 왔으며, 1801년 이전부터 사용했고 1866년 축일표를 ‘병인년 첨례표’라고 부른다는 세부 설명을 볼 수 있다.

새남터순교성지에 전시된 첨례표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언제라도 관헌에 붙잡혀 죽음의 형장에 끌려갈 수 있는 엄혹한 박해 시기에도 하루하루 모든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았던 신앙 선조들의 뜨거운 신심이다.

새남터본당 주임 백남일 신부는 ‘병인년 첨례표’에 대해 “박해 시기에 신자들은 성직자를 만나기 쉽지 않았음에도 성직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절제와 금욕을 지키며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첨례표에 무엇이 담겼나

과거에 첨례표라고 부르던 것을 지금은 축일표(祝日表, calendarium)라고 한다. 전례 주년을 형성하고 있는 전례일들을 종합, 수록한 표나 책이다. 첨례표가 갖는 의미는 가톨릭신자가 되면 ‘일상생활을 천주교 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현대에도 신자들은 신앙보다 교회 밖의 일에 매이는 경우가 많다.

신앙을 포기해야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박해 시기에는 모든 생활이 박해를 이겨내는 시간의 연속이라 할 만큼 가톨릭 전례를 생활화하려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야 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첨례표야말로 박해 시기 신자들이 순교를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던 모습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상징물이라 볼 수 있다.

첨례표의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1년 동안의 주일이 표기돼 있다. 첨례표에 주일이 7일마다 표기돼 있다는 것은 우리 신앙 선조들은 교회 설립 초기부터 주일의 시기와 의미, 주일에 해야 하는 일을 알고 교회 가르침에 따라 주일을 거룩히 지켰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첨례표에는 소재(小齋)와 대재(大齋)를 지켜야 하는 날이 표기돼 있다. 첨례표 상의 소재는 음식을 절제하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 대재는 단식하는 것을 뜻한다. 소재와 대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묵상하며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행위이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소재와 대재는 특히 사순 시기에 속죄와 극기, 절제를 위한 적합한 방편이 된다.

신앙 선조들이 첨례표의 소재와 대재를 지켰다는 사실은 교회사 기록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성 손자선 토마스가 감옥 안에서도 소재, 대재를 지켰다는 「한국천주교회사」 기록, 1801년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이 ‘백서’에서 신자들의 대·소재 관면을 요청한 내용 등은 대·소재 지키는 일을 신앙의 기본으로 삼았음을 방증한다.

첨례표에는 교회에서 기념해야 할 주님과 관련된 축일, 성모 마리아, 천사들, 성인들과 관련된 축일이 표시돼 있다. 오늘날 교회 전례력이 1년을 주기로 부활과 성탄을 중심으로 구성되듯이 첨례표를 사용하던 박해 시기에도 그리스도의 생애와 신비가 전례력의 중심을 이뤘다. 박해 시기 신자들은 첨례표를 지키면서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수난을 받은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 부활, 승천했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익힐 수 있었다. 첨례표는 박해의 고통을 견뎌 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주님 부활이라는 점은 첨례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865년 첨례표에는 1866년 3월까지, 1866년 첨례표에는 1867년 4월까지 주일과 축일이 표시돼 있다. 이것은 다음해 첨례표 중 일부를 신자들에게 미리 안내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부활 시기까지 미리 표시했다는 것에서 부활 신앙을 강조하고자 했던 한국교회 전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첨례표에는 매괴회, 성의회, 예수성심회, 성모성심회, 전교회 등 5개 단체와 관련된 날이 표시돼 있다. 이를 통해 각 단체의 내력과 조선 교회 신자들이 단체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음도 유추할 수 있다.

첨례표에 기록된 파공(罷工)은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1846년에 순교한 한이형(라우렌시오)은 농사일이 바쁠 때에도 파공날 오후에는 절대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교회는 교황청 허락을 받아 파공을 관면받고 주일 정오부터는 일을 하기도 했다. 농부들에게 매우 바쁜 농번기에 교회가 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파공을 관면받고자 하는 날이 주일과 겹치는 경우에는 관면을 허락하지 않았고 엄격하게 파공을 지키도록 했다.

백남일 신부는 “박해 시기에는 교회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신자가 많지 않았지만 첨례표 하나만 지니고도 교회 전례를 철저히 지켰던 신앙 선조들의 자세를 오늘의 신자들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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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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