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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8) 일자리, 설자리, 살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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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중년 남성 자살시도자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70~80대 노인 자살률이 높긴 하지만 매년 자살사망자 수로 봤을 때 40~50대가 가장 많았고,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데도 실제 지역사회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서 중년 남성들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 중년 남성들은 최근 자주 이슈화되고 있는 취약한 1인 가구 문제, 고독사 문제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인구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확인한 중년 남성 자살시도자들의 경험은 이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이른 사망이나 가출로 인한 부모의 부재, 가정폭력을 동반한 부모의 불화와 이혼 등을 겪으면서 심리적 상처를 받았고 일부는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심각한 학대 피해를 받았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경우, 당장 시급한 생계를 위해 불안정한 직장을 전전하게 됐고, 이후에도 경력 부재로 재취업 기회가 차단되는 현실을 겪었습니다. 또 안정된 직장에서 나와 사업을 시작한 경우, 사업이 계속 실패하거나 어렵사리 모은 돈을 친구나 가족에게 빌려주고 못 받거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혼생활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균열이 생기고 갈등이 반복되면서 결국 파국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년 남성들은 이혼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외상을 입고 사회적 위상(체면)도 하락하면서 거의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대외적으로도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중년 남성들은 대개 혼자만의 삶을 감당하지 못했고 생활 리듬을 상실하면서 일상 자체가 파괴되어 갔습니다.

이제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술과 24시간 틀어놓는 TV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홀로 지내는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면에 누적된 것(이혼, 실업, 경제 실패, 빚, 소외, 건강 문제)들이 죽음을 향한 행동으로 변이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민하고 경직된 성격, 도움 청하지 못하는 자존심, 자신을 검열하고 괴롭히는 자기 처벌 행동 등은 자살 충동을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의 조건을 ‘일’, ‘작업’, ‘행위’라고 했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 자신이 좋아서 하는 작업, 그리고 자신을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행위(활동)가 있어야 인간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50대 남성 자살시도자들 역시 일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년 남성 자살시도자 연구 결과를 검토하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제공한 결론은 하나의 라임(rhyme)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일’ 자리가 없으면 ‘설’ 자리가 없고, ‘설’ 자리가 없으면 ‘살’ 자리가 없고, ‘살’ 자리가 없으면 삶의 ‘끝’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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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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