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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르포] 가정폭력 벗어나 꿈 되찾은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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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남편의 폭력으로 꽃다운 20대 시절을 공포와 슬픔 속에서 보냈던 두 여성은 아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오래전 품었던 희망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폭력에서 벗어나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두 여성의 꿈.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고자 용기를 낸 경험은 두 사람이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두 여성이 다시 꿈을 찾게 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남편의 폭력, 두 여성의 삶 짓밟다

#25살이었다. 봉제공장에서 만난 이은영(가명·48)씨의 전남편은 “요즘 여자 같지 않고 수수하다”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남자와 밥을 먹는 게 처음이었던 이씨는 전남편이 권하는 술을 거절하지 못했고, 그렇게 임신을 하게 됐다. “전남편은 덩치가 크진 않았지만 술을 먹으면 무섭게 변했어요. 임신한 저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잦았고, 결국 두 번이나 유산을 했어요.” 두 아이를 잃고 또 다시 아이가 생겨 2002년 혼인신고를 한 이씨. 하지만 전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여러 번 신고도 했지만 전남편이 ‘때린 적 없다’고 잡아떼니 경찰은 부부간에 잘 이야기해 보라는 말이 전부였죠. 헤어지자고 말해도 ‘너는 내 손아귀에서 못 벗어난다’고 협박을 한 탓에 쉽게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전남편이 준 생활비는 한 달에 30만 원. 이씨는 우유배달에 화장품 포장, 바느질 일을 해가며 힘들게 두 아이를 키웠다.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고 버틴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욕을 하고 성폭행까지 하는 전남편의 횡포에 2015년 이씨는 이혼을 하게 됐다. 하지만 6년 뒤 다시 이씨의 집에 찾아온 전남편은 집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라며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명의를 바꿔주고 도망쳐온 이씨는 지난 1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하 보호시설)에 오고 나서야 전남편과의 악연을 끊어낼 수 있었다. 이씨는 전남편과 살았던 시간을 “불행하고 지옥같았다”고 말했다.

#11년 전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추위에 가방 하나 들고 5살, 7살, 12살 세 아이 손을 잡고 쫓기듯 집을 나온 날을 생각하면 채서진(가명·50)씨는 아직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전남편은 연애시절에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곤 했지만 그때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죠. 결혼을 하자 저를 밀치며 시작된 폭력성은 점점 강도가 세졌고 칼을 들고 협박하는 상황까지 갔어요.”

술을 먹으면 온갖 집기를 집어 던지는 탓에 컵을 모두 플라스틱으로 바꾼 채씨. 전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에는 아이들 옷을 입히고 재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혹시 자신이나 아이들을 때리려고 하면 도망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씨가 선뜻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 것은 아이들의 아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전남편의 모습에 채씨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큰 아들이 5살 때, 소리지르는 아빠가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렸어요. 그랬더니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벽에 밀치더니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 다시 밀더군요. 그러더니 탁자로 아이 머리를 내리쳤어요. 탁자에 구멍이 날 정도였죠.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불행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았다. 채씨의 간절한 마음은 그가 보호시설에 들어와 자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꿈

남편의 폭력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도망치듯 들어온 곳.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들어온 여성 대부분은 처음 몇 주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소숙희(안나) 원장의 설명이다.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존엄성이 짓밟힌 경험은 피해여성들을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은 보호시설에 처음 왔을 때는 무기력증과 우울증, 그리고 낯선 공간에 온 두려움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울증과 조현병 증상이 있는 분들이 5,6년 전에 10였다면 지금은 70로 크게 높아졌죠. 그래서 며칠간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게 돕습니다.”

따라서 서울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대표이사 황경원 안드레아 신부) 산하 기관인 이 보호시설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의료지원, 직업재활뿐 아니라 심리정서 지원에 힘을 쏟는다. 앞으로 자활해 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반자녀 학습과 심리 지원을 병행하는 것도 보호시설만의 특징이다.

소 원장은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폭력의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며 “가정폭력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고자 동반자녀들에 대한 심리치료,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학습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 대부분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너한테도 잘못이 있는 게 아니냐”, “아이들 생각해서 참지 그랬냐”는 말을 듣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보호시설이었다. 채씨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을 때 구체적인 방법과 방향을 알려준 곳이 이곳이었다”며 “제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해주신 원장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9년 자립에 성공해 어엿한 가게 사장이 된 채씨. 혼자 세 아이를 키우며 여전히 힘든 순간이 있지만, 전에는 그럴 때 죽음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삶을 생각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남편의 폭력으로 젊은 시절을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던 이씨. 20여 년간 웃을 일이 없었을 그에게 꿈을 묻자 “유치원 선생님이 하고 싶었어요”라며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깊고 어두운 터널을 용기있게 빠져나온 이씨의 표정은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했다. “이제 전남편에게서 벗어나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801-165688 (예금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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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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