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 낚는 어부’ 같은 사목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에서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정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공동체인 듯이 말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상담사례들을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가정임을 알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란 것이지요. 부모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양육이라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키울 때 사육이라고 하고, 부모가 양육자가 아니고 사육자일 때 많은 문제와 문제아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 심리학의 정설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가정만이 아니라 종교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이끄는 일을 사목이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을 치듯이 돌본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사목을 하는 사람들을 양치기라는 의미의 사목자, 혹은 목회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목자들 중 간혹 신자들을 사목이 아닌 사육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곤 합니다. 사목자가 아닌 사육자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포 신앙. 사목자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신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설교 내용들, 심약한 사람들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목자로부터 들은 말이 바로 신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여겨서 그때부터 공포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사목자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를 못하는 것은 마음 안에 공포심이 있어서이지요. 공포심은 신앙생활을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극단적 신앙 구호를 외치게 되는데 이런 구호는 자기 마음 안에서 들리는 공포스런 소리가 외부로 표출된 것입니다.
공포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삶을 광신도의 삶으로 변질시키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이나 교리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으며 신보다 사목자를 더 숭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간혹 교활한 종교인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취하려고 합니다.
공포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갖게 하거나 항거하게 하는데, 종교가 만드는 공포 신앙은 그런 최소한의 저항 의지마저도 없애버립니다. 종교가 사람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노예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들은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이 몸 담은 종교집단에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쳐 가정파탄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사육자들인 것입니다.
공포 신앙을 가진 신자들은 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삶을 살게 되고 병적인 죄의식에 중독이 됩니다. 이들은 종교적 신경증에 시달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천당에 가도 자기는 절대로 가지 못할 것이란 구원불안증, 조금의 죄라도 지으면 안 된다는 완전강박증 등등. 그래서 이들은 신에게 가까이 나아가고 자유로이 대화하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사목자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 보는 노예적 신앙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보니 이들의 영성생활은 소위 가짜영성으로 변질됩니다. 진정한 겸손이 아닌 남의 눈치를 보는 가짜 겸손, 진정한 가난이 아닌 심리적 궁핍에 찌든 가짜 가난 등등,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적 연출을 하며 전전긍긍하는 비굴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목자는 절대로 사육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 마태 4,18-22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