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다. 요셉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는 오랜 전통 안에서 요셉을 공경해왔고, 오늘날에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내며 요셉을 기억하고 있다. 사도시대 이후 사도들을 이어 교회를 이끌고 신자들을 가르쳤던 교부들 역시 요셉에 관해 가르쳤다.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요셉 성인의 면모를 만나본다.
아버지 요셉
요셉과 예수님을 그린 성미술 작품들을 보면 요셉과 예수님을 친밀한 아버지와 아들로 표현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성부를 ‘아버지’로 표현하기에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라는 느낌이 낮설 수도 있다. 그러나 교부들은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였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요셉이 성적 결합을 통해 그리스도를 낳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요셉이 ‘그리스도의 아버지’임을 명확하게 가르쳤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자식을 입양한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낳지 않았어도 당연히 그 아이의 아버지”라면서 “육체적 관계 때문이 아니라 혼인의 참된 영적 결합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참된 남편이기 때문에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이라면, 마리아와 혼인의 참된 일치를 이룬 요셉의 아들인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요셉과 예수님의 특별한 관계는 요셉이 하느님의 아들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직접 부여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듣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했다”(마태 1,25)며 요셉이 그리스도께 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을 묘사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 구절을 두고 요셉이 “예수님을 아버지로서 보살피도록 불렸다”며 “이름을 붙임으로써 태어날 아기와 중요한 관계가 된다”고 해설했다.
요셉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버지를 위한 표상이다. 요셉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였지만, 자녀인 예수님을 보호하고 돌보고 키우는 아버지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했다.
베다 성인은 요셉을 “구원자 주님의 완벽한 양아버지”라고 표현한다. 그는 “요셉은 율법에 따라서 어린 젖먹이를 위해 성전에서 희생 예물을 올렸고, 박해의 위험이 닥쳤을 때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 갈 사람이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린 아들이 자라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사도직의 예표
교부들은 요셉을 단순히 아버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만 평가하지 않는다. 요셉이 성경에 등장하는 장면은 적지만, 교부들은 요셉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사도직의 예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마리아와 남몰래 파혼하려는 요셉을 두고 “드센 감정인 질투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남다른 자제심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했다. 약혼한 마리아가 임신을 했음에도 질투심으로 마리아를 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셉은 임신 사실이 드러나면 율법에 따라 마리아가 죽게 될 것을 염려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셉은 조금이라도 동정녀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으려 할 만큼 질투라는 격한 감정에서 벗어나 있었다”면서 “요셉은 율법보다 더 높은 법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요셉이 질투심이라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운 상황에서도 감정을 자제했고,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성덕을 지녔기에, 마리아와 혼인이 가능했고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 후 요셉은 천사의 말을 따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한 후 갈릴래아 지방에 자리 잡는다. 힐라리오 성인은 천사의 지시에 따라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난 요셉을 두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에 관한 소식을 전할 임무를 맡기신 사도들과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헤로데가 죽은 뒤 요셉이 유대아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듯이,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크로마시오 성인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요셉의 삶의 궤적을 창세기의 장면들과도 대비시킨다. 그는 “오래전 악마가 동정이었던 하와에게 먼저 말은 건 다음에 남자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죽음의 말을 건네기 위해서였다”면서 “거룩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먼저 말하고 다음에 요셉에게 말한 것은 생명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풀이했다. 크로마시오는 “요셉의 이름은 어떤 죄에 대한 비난과도 연관된 적이 없다”면서 “사실 ‘요셉’이라는 히브리 단어를 라틴어로 옮기면 ‘흠잡을 데 없는’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성상이나 성화를 보면 요셉은 목수로 묘사된다. 성경에 고향을 찾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마태 13, 55)이라며 업신여긴 사람들의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예수님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이라는 점을 들어 가르치기도 했다.
유스티노 성인은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동안 목수로서 쟁기와 멍에를 만드셨고, 우리가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살아가지 않도록 의로움의 상징들을 통해 가르치셨다”고 말하며 요셉을 따라 목수 일을 도왔던 예수님을 통해 노동의 중요성을 전했다.
힐라리오는 “분명 주님은 불로 쇠를 다스리시며, 옳은 심판으로 세상의 모든 권세를 녹여 없애시며, 형체 없는 덩어리로 인간에게 쓸모 있는 온갖 것을 만드시는 목수의 아들”이라며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의 직업을 통해서 아버지 하느님을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