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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성인들] (6)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1917~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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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복수입니다.”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Oscar Romero·1917~1980)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강조하며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력에 맞섰다. 암살 당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는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 사랑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성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삶과 정신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면모와 사랑을 찾아본다.


말씀을 중시한 10대 소년 로메로

‘주님의 말씀은 뉘우치는 자들에게 온유한 용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거룩한 지시이고 영원한 가르침입니다. 그 말씀은 밝게 비추는 빛, 희망을 주는 조언입니다.’

엘살바도르에서 태어난 10대 소년 오스카 로메로(이하 로메로)는 소신학교에서 공부할 시기 이 같은 시를 썼다. 전기 작가 헤수스 델가도씨가 찾아낸 당시 그 시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로메로는 그리스도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스카 로메로」 저자 케빈 클라크는 이러한 내용을 밝히며 “이 시에는 사제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10대 소년인 로메로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목수가 되길 바라던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해 13살에 사제가 되기 위해 산미겔 소신학교에 들어간 로메로는 산살바도르에 있는 국립 신학교,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를 거쳐 1942년 4월 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보수적인 주교

사제가 된 로메로는 1974년 산티아고 데 마리아교구 주교로 임명되기까지도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품으로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아나모로스에서 본당 사제로 활동하고 산미겔에서 교구장 비서 등 주요 직책을 수행하면서 그는 전통적인 교회 가르침을 수호하는 일에 전념했다.

엘살바도르 주교회의 사무처장과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주교, 산티아고 데 마리아교구 교구장을 역임한 후 1977년, 그가 산살바도르대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때 정부와 기득권 세력이 환영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반면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이라는 점에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많은 사제들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로메로 대주교 최측근이던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주교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은 훗날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된 그에게 “‘사람들이 대주교님이 전향했다고 말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물었더니, 대주교님은 ‘전향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로메로 대주교는 실제 1977년 중요한 일을 겪으며 한순간 회심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전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등의 실천에 관심을 가졌고, 산티아고 데 마리아교구 교구장 시절, 가난한 농민들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이미 힘없는 이들의 인권을 말했다.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

특히 그가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며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랑 실천에 나선 데에는 1977년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피살되는 사건을 경험한 영향이 컸다. 그란데 신부와 오랜 우정을 쌓은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란데 신부가 피살되자 정부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무시됐고 언론도 조용했다.

이에 로메로 대주교는 산살바도르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그란데 신부 장례미사를 주례하면서 “이 자리에 모인 사제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의 면담 제의도 거부했고, 그는 주일마다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로 고문 당한 이 등을 위해 강론했다. 군사 정권의 만행과 박해는 계속됐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용기 있게 가난한 이들 편에 섰고, 고통받는 민중의 대변자로서 그는 더욱 강하게 외쳤다.

“우리의 권리를 확고히 보호합시다.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그렇게 합시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동한다면 죄인들의 회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복수입니다.”


그리스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사랑

이처럼 군부 독재에 맞서 사랑을 외친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3월 24일, 눈을 감았다. 산살바도르 ‘하느님 섭리의 병원’ 성당에서 암 환자를 위한 미사를 주례하며 강론하고 제단 중앙에 섰을 때였다. 군사 정권 사주를 받은 무장 괴한이 그의 가슴에 총구를 겨눴고, 총알을 맞은 로메로 대주교는 숨을 거뒀다. 폭력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민중에게 불의가 아닌 양심을 따르라고 용기를 북돋운 그에게 군부가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어떤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른 사랑 실천에 주저하지 않았다. 피살되기 얼마 전 그는 한 기자에게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엘살바도르 민중 가운데에 부활할 것”이고, “엘살바도르 구원과 부활을 위해 내 피를 하느님께 기꺼이 바칠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러한 사랑의 순교에 로메로 대주교는 2015년 5월 23일 시복됐고, 2018년 10월 14일 성인 반열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사랑 실천 위해 우리도 모든 것 내려놓아야

2018년 10월 1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로메로 대주교 등 7명의 시성 미사를 집전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가 성덕의 삶을 살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 증거자였다고 밝혔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며 “오늘 시성된 성인들은 이 길을 따랐다”고 강조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자의 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에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며 ‘목숨을 내놓는 것’을 시복 시성 절차 새 안건으로 올린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교는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군부 독재에도 사랑의 승리를 예견한 로메로 대주교, 위협 속에서도 더 강하게 사랑의 길을 걸은 그는 한순간 성인이 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더욱 크다. 그가 남긴 사랑의 말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들려주고 있다.

“더 가지려 하지 말고, 더 나아지려 하십시오.”
“그리스도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 하나처럼 살 수 있습니다.”

“지치지 말고 사랑을 선포합시다. 사랑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우리 눈앞에서 폭력의 물결이 그리스도인 사랑의 불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사랑은 반드시 이깁니다.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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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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