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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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리스도인의 유머] 예수님과 성인들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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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건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까지 매사에 엄숙해야 할까?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다. 기쁜 소식을 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기쁨이나 유머와 같은 미덕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비롯해 성인들과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유머로 신앙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인 삶의 기쁨을 전하는 모습을 알아본다.


예수님은 웃지 않으셨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 번 우신 것이 기록돼 있다. 라자로가 죽었을 때(요한 11,35)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셨을 때(루카 19,41), 수난 직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히브 5,7)다.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드러나지 않은 일상의 삶 속에서 또 십자가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셨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세금으로 내는 돈을 보여 달라며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고 묻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태 22,15-22 참조)라고 신랄하게 응수했다.

또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쳐놓은 교묘한 올가미를 통쾌하게 치워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오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는 한 마디로 예수님을 시험해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던 이들의 속셈을 무너뜨렸다. 나이 많은 이들부터 시작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또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마태 23,24),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 등 재치 넘치는 위트와 비유로 청중을 압도했다.

예수회의 제임스 마틴 신부는 저서 「성자처럼 즐겨라!」에서 “예수님은 현명하고 재치 있으며 재미도 있는 분이셨음이 틀림없다”면서 “예수님의 비유, 로마 권력자에게 던지는 생생한 농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신랄한 응수에서 그분의 유머는 두드러진다”고 전했다.


죽는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던 성인들

“주님, 제가 소화를 잘 하게 해 주시고, 아울러 소화하기 좋은 음식도 내려 주소서. … 오 주님, 저에게 좋은 유머 감각을 주소서. 제가 농담을 받아들이고 삶 안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며 다른 이들과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하소서.”

토마스 모어 성인이 했다는 ‘유머를 위한 기도’다. 실제로 토마스 모어 성인의 삶은 유머로 가득했다. 토마스 모어 성인은 영국에 성공회가 생기기 전 대법관으로 영국 국왕 헨리 8세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조언자였다. 헨리 8세는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원했지만 토마스 모어는 왕의 부당한 이혼과 재혼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헨리 8세는 수장령을 내려 영국 성공회를 세웠는데, 토마스 모어는 이것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토마스 모어는 대법관에서 반역죄인으로 몰려 단두대에 오르게 됐다. 평소 그를 존경하던 사형집행인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다. 토마스 모어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자네는 아무 죄가 없네.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내 수염은 죄가 없으니 수염을 자르지 않도록 조심해 주게.”

3세기의 라우렌시오 성인은 석탄에 달구어진 석쇠 위에 올려져 구워 죽이는 형벌을 받고 순교했다. 그는 형 집행관들에게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뒤집어서 다른 쪽도 구워주시오”하고 의연한 태도로 유머를 남기고 순교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농담을 던졌기에 코미디언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유머를 사랑한 교황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유머를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사제, 교황대사, 베네치아 총대주교, 교황으로 살아오면서 남긴 수많은 유머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한 기자가 성 요한 23세 교황에게 “교황청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지”를 물었을 때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이 질문에 “그들 가운데 절반 쯤은 일을 한다”면서 “그나마도 오후가 되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로마 거리를 걷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한 여자가 교황의 옆을 지나다가 친구에게 이렇게 소곤댔다. “어머! 되게 뚱뚱하시네!” 이 말을 들은 성 요한 23세는 화를 내기는커녕 “부인, 콘클라베가 미인 선발대회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됐다”면서 “이해해 달라”고 응수했다.

1940년 프랑스 교황대사로 일할 때의 일화다. 한 우아한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성 요한 23세 교황의 맞은편에 드레스 목선이 깊게 파여서 가슴이 상당히 많이 드러나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교황에게 “대주교님, 이 무슨 남부끄러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다 저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 게 당황스러우시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성 요한 23세는 “아니에요, 사람들은 전부 다 나를 쳐다보고 있어요. 내가 저 여자를 보는지 안 보는지 보려고 말입니다”라고 답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보통 유머 감각을 동반한다”(129항)면서 신앙생활에서 유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머를 사랑한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후 전 세계 신자들에게 첫 강복을 하면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선보였다. 교황은 첫 인사에서 “콘클라베에서는 로마의 주교를 뽑는데, 동료 추기경들이 세상의 끝에서 로마의 주교를 뽑아왔다”고 말했다.

2015년 앗 리미나를 위해 교황청을 찾은 한국 주교단에게는 “한국어 통역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한국을 다녀왔는데, 그동안 한국어를 잊어버려 통역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해 긴장된 자리를 미소로 바꿨다. 또 코로나19에 확진됐던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완쾌 후 성녀 마르타의 집 식당에 나타나자 성경의 일화를 빗대 “라자로가 부활했다”고 말하며 환영했다. 최근 입원이 잦아지며 그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교황은 퇴원하며 “저 아직 살아있어요!”라는 농담으로 세간의 걱정을 지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머를 통해 딱딱하고 완고한 신앙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교황은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복음 선포자는 장례식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10항)고 강조했다. 예수님과 성인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유머와 해학은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라는 당부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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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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