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얼굴 생김새와 성격이 다르기에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학교 안에서 배우고 있는 청주시 옥산면 양업고등학교(교장 장홍훈 세르지오 신부)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넘어지고 실패한 경험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유명 학원강사의 강의나 값비싼 과외수업은 없지만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 “3년간 학교 생활을 하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한 양업고 학생의 말은 세상으로 나갈 아이들에게 학교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케한다.
한 사람 영혼의 무게와 깊이는 바다나 우주보다 무겁고 깊다
대안교육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1990년대, 교회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학교밖청소년에 주목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한 명 한 명의 젊은 영혼들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교구는 40주년 기념 사업으로 이러한 학생들이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울타리를 마련코자 했다. 그렇게 1998년 양업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은 사랑의 교육자였던 최양업 신부의 교육 영성을 실천한다는 의미와 함께 ‘어질고 선하며 아름답고 귀한 새 일을 시작하고 이루다’는 뜻에서 가져왔다.
교장 장홍훈 신부는 “처음에는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모였기에 교실이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자각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고민했다”며 “학생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스스로 삶을 찾아가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현실·선택 이론’을 교육방법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윌리엄 글래서의 연구에서 가져온 ‘현실·선택 이론’은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때 내가 느끼는 불행과 갈등을 비롯한 모든 것이 자신에 의해 선택됐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교육을 통해 알려주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기쁨, 양업고에서 배우다
양업고등학교 교육의 핵심인 현실선택 이론은 다양한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다. 노작, 산악등반, 현장학습, 봉사활동, 청소년성장프로그램, 영성, 가족관계가 포함된 특성화 교과가 대표적이다.
1년에 한 번 전교생이 지리산을 오르는 산악등반을 비롯해 학교 앞 텃밭에 작물을 심고 가꾸는 노작, 특정 주제에 관해 가족과 나누고 이를 기록으로 남겨보는 가족관계, 해외로 나가서 진로와 관련된 체험을 하는 청소년성장프로그램 등 교실을 벗어나 세상 안에서 필요한 가치를 배워나간다. 특히 특성화 교과 모든 활동은 기획부터 진행, 결과 발표까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과목과 관련된 현장을 탐방하는 현장학습의 경우 학생들이 장소 선정부터 섭외, 참가자 모집까지 모두 학생들에 의해 진행된다. 이때 교사는 진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정도로 관여한다.
양업고 3학년 김진한(빈첸시오 아 바오로)군은 “지리산 등반 때 준비 과정부터 실제 산을 오르기까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던 적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힘이 돼준 친구들, 선생님과 가까워져서 좋았을 뿐 아니라 힘든 여정을 이겨낸 나 자신에게도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좋은 학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렇기에 양업고는 가정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노력도 잊지 않고 있다. 학기초, 양업 새가족 마중물 행사를 비롯해 아버지학교와 어머니학교를 각각 1박2일간 개최한다. 뿐만 아니라 체육한마당, 양업제 등 학교 행사에 학부모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애쓰고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주말에는 집에서 부모님과 대화하며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가정 안에 사랑이 커져야 학생들의 행복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느님 보시기 좋은 학교
양업고등학교 주변은 고요하다. 학교 앞에는 노작 활동을 하는 텃밭이 길게 늘어서 있고 학교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적한 시골에 자리한 양업고 학생들은 여느 도시 학생들처럼 놀거리가 없을 것 같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120명 정원인 학교에 만들어진 동아리만 36개. 이날 인터뷰에 참여한 김진한 학생은 15개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자인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다빈(유스티노)군은 “지난 축제 때 패션쇼를 기획했고 체육대회 때는 단체복 디자인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 꿈이 없었다는 최군은 양업고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됐다고 미소지었다.
중학교 시절 학교, 학원, 집을 오가는 여느 또래와 같은 생활을 했던 양업고 3학년 이정우(레오)군. 좋은 대학을 나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찾는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3년 전과 달리 이군은 “지금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양업고 학생들에게 학교는 성장의 발판이 돼 줬고, 시련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줬다. 그리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무엇보다 힘이 된 것은 “너는 귀한 존재”라는 응원이다.
장홍훈 신부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저희 양업고는 학생들이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이를 통해 어질고 선한 하느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힘을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