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杜峰·프랑스명 Ren? Dupont) 주교가 올해로 사제서품 70주년을 맞았다. 20대 젊은 시절,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국 땅에서 선교 의지를 불태웠다. 약자의 편에서, 농민의 손을 잡고 불의에 항의하기도 했다. 솔직담백하고 열린 마음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 하나로 살아왔고 신앙인들의 존경을 받는 그는 그럼에도 “저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7월 24일 경북 의성성당에서 사제서품 7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두봉 주교를 경북 의성군 봉양면 ‘의성 문화마을’에 있는 자택에서 만나봤다.
“나 같은 사람이 사제로서 70년을 살아왔습니다. 부끄럽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사제들에게 ‘예수님의 삶을 살아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것보다 조금 더 예수님과 닮은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저희를 부르실 겁니다. 그때까지 나의 삶을 높이고, 개선하고, 주님과 더욱 일치될 수 있도록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점을 모든 분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두봉 주교는 자택을 찾은 취재진이 장비를 챙기고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먼저 나와 환한 웃음으로 맞이했다. “멀리서 봤는데 취재 차량인 것 같더라. 비도 많이 오는데 찾기 힘들지 않았어요?” ‘두봉 천주교회’라는 팻말 옆으로 조성된 텃밭에 옥수수가 싱그럽게 열려 있는 모습을 신기해하는 취재진에게 그는 “너무나 좋지 않나요. 주님의 축복입니다. 마냥 행복해요. 옆에 있는 예쁜 꽃들도 어찌나 한결같은 축복인지요”라며 웃어보였다.
직접 주례하게 될 사제서품 70주년 기념미사에서 전달할 메시지에 대해 묻자 두봉 주교는 “교구장 주교님을 비롯해 여러 신부님들, 그리고 교우들 앞에서 ‘사제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죄의 사함을 베풀어 주고, 예수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죠. ‘신부가 되어간다’는 것은 평생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한도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봉 주교는 요즘 ‘이상하게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TV프로그램도 출연했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자택에도 수시로 사람들이 방문한다. 신자와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한번 꼭 만나 뵙고 싶다’는 사람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나면 별다른 대화도 없다. 그저 서로 만나고 싶었던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는 “사람들이 찾아와 주고 내가 그 사람들을 맞아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주신 ‘건강’의 힘으로 이렇게 90살이 넘도록 살고 있는 것이죠. 변변한 건강관리를 하지 않아도 이렇게 살고 있는 자체가 고마운 겁니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 땅을 밟았던 두봉 주교의 눈에 현재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떨까. “당시 한국은 정말 후진국이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긍지를 느낀다’고 외부에 자신 있게 말하고 있어요. 우리 국민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곳에서 하나하나 개선해 나갔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결혼 기피 현상으로 인구가 줄고, 특히 이농현상으로 젊은 층이 농촌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앙의 끈만은 놓지 않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농촌이 못 살던 시절, 구호물자를 본당에서 배분했었는데 그 때 몰려온 신자와 예비신자들을 보고 어떤 분이 ‘구호물자가 없으면 오래가지 않아 본당도 찾는 사람이 없어 텅 빌 것’이라고 하셨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구호물자가 없어졌어도 신앙을 버린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들 신자답게 살았죠. 그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떳떳하게 살아가는 분들이죠.”
한국교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두봉 주교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면 비록 안 좋은 것이 있더라도 긍정의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남을 좋게 보고, 남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긍정의 힘이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그 기본은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확답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자 ‘선’ 그 자체이십니다. 제가 아는 신자 중에 계속 ‘감사기도’를 드리는 분이 계세요. 항상 감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두봉 주교에게는 그 흔한 주교 문장이나 표어조차 없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안동교구 사명 선언문’이다. ‘기쁘고 떳떳하게’를 주제로 한 선언문의 실천 방법에 대해 묻자 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표구돼 있는 사명 선언문을 손가락으로 직접 가리켰다. “안동교구가 처음 생겼을 때보다 지금은 신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죠.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까요. 심지어 주일학교가 아예 없는 본당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항상 얘기했어요. 다른 교구를 부러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주님이 주신대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이에요. 평범하게, 소박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환경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서로 돕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됩니다.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죠.”
두봉 주교는 평소 ‘행복’에 대해서도 저서 등을 통해 많은 말을 남겼다. 그에게 행복이란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또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다. “작은 것을 항상 실천하십시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고, 남들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긍정을 선택하고 실천하면 행복해집니다.”
사제로서 70년을 살아온 그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두봉 주교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침묵’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개인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앞에서 침묵을 지켜보려고요.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죠. 사제로서의 삶 동안 항상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게 전부죠.”
두봉 주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잠시 생각한 뒤 미소를 띠며 말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빛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고마운 일입니다. 주님을 모시는 우리 모두는 항상 빛나는 존재입니다. 항상 떳떳하십시오.”
두봉 주교는…
1929년 9월 2일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1953년 6월 29일 사제서품 (파리외방전교회)
1954년 한국 입국
1955~1967년 대전교구에서 사목
1969년 7월 25일 주교서품
1969~1990년 안동교구장
2019년 12월 대한민국 국적 취득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