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여 년 전, 충청북도 지역에 신앙의 씨앗을 뿌린 파리외방전교회 임 가밀로 부이용(R. Camille Bouillon, 1869~1947) 신부는 매산이 둘러싸고 있는 감곡면 왕장리에 장호원성당(현 감곡성당)을 지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 뿐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교육에도 관심을 쏟았던 임 가밀로 신부는 지역에 매괴학당을 설립했다.
산골 지역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던 매괴학당은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기에 청소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울타리가 됐다. 한 외국인 선교사가 뿌린 씨앗은 귀하고 값진 열매를 맺었다.
충북 음성군 왕장리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교장 이수한 시릴로 신부)는 오랫동안 지역에서 서로 사랑하며 세상의 빛이 될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하느님 은총의 씨앗, 매괴학교에서 결실 맺다
1914년부터 100년 넘게 매산에서 거행되고 있는 성체거동 행사에는 본당 신자들뿐 아니라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동행하고 있다. 바로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 학생들이다. 십자가와 성모상이 서있는 매산이 품고 있는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에서는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자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는 학생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1894년 경기도 여주군 부평리 부엉골본당에 부임한 임 가밀로 신부는 본당 위치가 적당치 않아 장호원의 매산 언덕에 있는 한옥을 매입해 본당을 이전했다. 그렇게 충청북도 최초의 본당인 장호원성당(현 감곡성당)의 역사가 시작됐다. 성당을 이전하자 신자 수 5,6명에 불과했던 교세가 1300명으로 확장됐다.
이때 임 가밀로 신부가 눈을 돌린 것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업이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키워낼 수 있는 힘이 청소년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1907년 세워진 매괴학당이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의 전신이 됐다.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 인근에는 신앙 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학교 뒤로 난 언덕을 오르면 1930년 충청북도에 최초로 건립된 감곡성당을 비롯해 매산 정상에는 십자가가 학교를 바라보고 있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의 총을 맞고도 파괴되지 않은 감곡성당 성모상은 하느님 은총의 표징으로, 신자들의 신앙을 지켜주고 있다.
거룩한 신앙 유산 아래에서 성장하고 있는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 학생들은 나를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함께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하느님 사랑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었다.
함께할 때 커지는 행복 배우는 매괴학교 학생들
“혼자 할 때보다 같이 할 때 배우는 것도 많고 행복이 커진다는 것을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매괴고등학교 2학년 최은서양은 교과서나 학습지에서 배울 수 없었던 삶의 가치를 학교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는 수업 외에 다양한 활동이 열린다.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학생들이 공연을 펼치는 ‘매(梅)스킹’(버스킹), 아침등교 선도 이벤트로 분주하다.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을 격려하기 위해 학생자치회 차원에서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건물 1층 로비에는 ‘양심우산 이벤트’가 상시로 진행되고 있다. 갑자기 비가올 때 우산이 없는 친구들을 위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의견을 모아 우산을 빌려주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우산 구입 비용은 학교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우산을 빌리고 반납하는 방식은 모두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이처럼 매괴고등학교·여자중학교에서 수업을 제외한 모든 활동은 학생들이 주체가 된다. 학급회의와 학생자치회를 거친 학생들의 의견은 학칙이 지켜지는 선에서 대부분 실현된다.
교장 이수한 신부는 “두발 자유, 등교 복장을 비롯해 소소하게는 학교에 벤치를 만들어달라는 등 학생들이 회의를 거쳐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요청하는 사항은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기에 아이들이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알고 그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배웠으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선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생 하나하나의 의견이 모이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의견을 내고, 때론 부딪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배려’와 ‘공동체의 힘’을 배운다.
최은서 양은 “다른 사람과 무언가 함께하면서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며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고 어떻게 대처하는지 배우면서 한걸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학교 안에서 배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혼자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학생·교사가 사랑 안에서 행복한 학교
함께의 과정에는 친구들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도 동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이벤트는 7월에 열리는 ‘매괴학교 교장 신부님이 쏜다 스포츠 미션’이다. 올해로 5회째인 이 행사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2인3각, 물풍선 터뜨리기 등 친구들과 미션을 수행한 학생들에게 교장 신부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이벤트다. 더위와 학업으로 지친 학생들을 위해 이수한 신부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값비싼 상품이나 화려한 이벤트는 없지만 학생들을 생각하는 교장 신부님의 마음을 기억하며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1학기를 마무리한다.
교장 신부님이 주관하는 행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매년 10월 열리는 이수한 교장신부님배 체육대회는 교사들과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풋살, 피구 경기를 하며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며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킨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더 배움학교’도 학생들과 동행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노력 중 하나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신청자를 받아 수능대비 집중지도를 하는 이 프로그램은 토요일을 제외한 6일간 진행된다.
매괴고등학교 3학년 조한별양은 “저희 학교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하는 행사들이 많다”며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교장 신부님을 비롯해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모습에서 저희들을 향한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장 이수한 신부는 “학생들에게 대단한 무엇을 해주기 보다는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어 주고자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늘 고민한다”며 “미사하고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학교 안에서 가톨릭적인 삶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가톨릭학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