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을 담은 흙색 옹기의 표면은 분칠을 한듯 뽀얀 가루로 뒤덮인다.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발효식품이 발달된 우리나라 음식들은 옹기 안에서 제 맛을 찾는다. 지금은 김치냉장고, 플라스틱 용기가 옹기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그릇이 내는 맛을 따라가긴 어렵다. 생명이 살아있는 옹기는 옹기장의 손길로 완성된다. 땅에서 나온 거친 흙을 빚고 구워서 생명이 숨쉬는 그릇으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 무더운 여름을 맞아, 날씨만큼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옹기를 빚고 있는 이지수(필립보·82) 옹기장을 만났다.
신앙선조 삶, 옹기에 담기다
온천수가 나오는 아산은 예로부터 흙이 좋기로도 유명했다. 흙이 좋으니 흙으로 빚는 옹기를 만들기에 적합했고 옹기장이 모여들었다. 염치·도고·선장 등 아산 곳곳 옹기가마들은 성업을 이뤘다. 그중에서도 도고면 금산리는 한때 300명도 넘는 옹기장이 모여 살던 장항선 최고 옹기마을로 불렸다. 삽교천이 방조제로 막히기 전에는 새우젓과 소금을 실은 배들이 인주와 선장까지 들어왔다. 도고면 금산마을 옹기에 새우젓과 소금을 담아 팔기 위해서다. 도고 옹기에 담긴 새우젓과 소금이 전국으로 팔려나가면서 그 우수성도 널리 알려졌다.
도고면 명품 옹기의 시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다. 박해를 피해 도고면 금산리에 정착한 신자들이 옹기를 구워 팔면서 지역에 옹기산업을 정착시킨 것이다.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이지수 옹기장도 조부가 박해를 피해 도고면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옹기일을 하게 됐다.
“박해를 피해서 산골 깊은 곳에 터를 잡고 어렵게 살았지만 같은 믿음이 있으니 서로 도우며 가족처럼 지냈어요. 옹기기술자의 90 이상이 신자였고, 여자들은 옹기를 가져다 팔았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옹기 있어요, 묵주 있어요’ 하면서 성물도 꼭 같이 팔던 모습이예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된 옹기일을 선택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다는 게 이지수 옹기장이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옹기장이었기에 이지수씨도 열 여섯살에 흙 만지는 법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옹기일이 힘에 부칠 때도 많았지만 좋은 손재주와 성실함은 그를 장인의 길로 이끌었다.
땀과 정성으로 완성된 옹기
60년 넘게 옹기를 빚어온 삶. 기쁠 때 보다 힘들 때가 많았지만 이지수 옹기장에게 옹기는 자식과 같다. 지금은 기계로 제조된 흙을 쓰지만 이 옹기장이 옹기일을 한창했던 1960,70년대에는 직접 흙을 퍼와 물 반죽을 하고 발로 밟고 떡메를 쳐서 반죽을 만들었다.
옹기 빚는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흙가락을 물레에 올려놓고 옹기바닥을 만들고, 타름(흙을 둥글게 쌓아 올리는 작업)을 올린 뒤 수레질(옹기의 두께를 고르게 하고 모양을 내는 일)을 한다.
기계로 뽑아낸 흙가락은 단단하고 무거워 오랜시간 손에 힘을 주고 모양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젊은 남자도 하기 어려운 작업이지만 80세가 넘은 이 옹기장은 물레를 몇 번 돌려 금세 모양을 잡아낸다.
수레질이 끝난 후 근개라는 도구를 이용해 그릇 벽의 두께를 일정하게 하고 표면을 고르게 한다. 그 다음 옹기의 주둥이 부분을 올린 뒤 가죽에 물을 묻혀 가장자리를 돋워 ‘전 잡기’를 한다. 이어서 띄줄을 넣거나 손잡이를 만든 뒤 그늘에서 말린다. 80가량 마른 옹기에 유약을 입혀 완전히 건조하면 옹기장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끝이다.
이제 흙이 아닌 불을 다뤄야 하는 더욱 고된 작업이 남았다. 나무로 불을 떼는 가마의 최고 온도는 1200도가량. 서서히 불을 올려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기에 며칠 밤을 새며 불을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옹기공장에 전기가 없으니 여름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작업을 해야 했어요.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차례로 곁에서 부채를 부쳐주며 무더위를 이겨내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여름에 어떻게 일을 했나 싶습니다.”
옹기가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불의 상태를 피움불, 돋굼불, 배낌불이라 부른다. 일반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과정이지만 옹기기술자들은 불의 색, 온도를 보고 느끼며 옹기가 잘 구워지는 상태를 확인한다.
“가마에 불을 떼기 시작하면 9일 밤낮을 지키며 불 상태를 확인해야 해요. 한창 옹기를 구울 때는 새벽에 나와서 자정이 가까워야 퇴근했습니다. 젊은 시절을 옹기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불의 상태에 따라 옹기를 잘 굽고 식혀야 단단하고 질 좋은 그릇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지는 옹기작업. 겨울에는 흙이 얼고 손을 쓰기 어려워 잠시 일을 쉬지만 여름에는 더위를 견뎌가며 옹기를 만들어야 했다. 1200도가 넘는 가마 앞에서 여름을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지수 옹기장은 “가마에서 나올 좋은 옹기를 생각하며 당시에는 더운 줄도 모르고 일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달 여의 시간 동안 온 정성을 다해 몰입해야 하는 과정. 장인이 생명을 담아 완성한 옹기는 살아 숨쉬는 그릇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투박하고 무겁지만 사람을 살리는 옹기는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켰던 신앙선조들의 단단한 삶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옹기가 많이 잊혀졌지만 생명을 살리는 좋은 그릇을 다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