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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생명의 존재론적 의미(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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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살림의 문화, 생명을 존중하고 그 신비를 드러내는 생명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생명이 자리한 우리의 현대 문화는 전적으로 과학ㆍ기술주의에 의해 정초되어 있으며, 정치·경제적 체제는 자본주의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 위에서 생명문화를 정립하는 길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오늘날 너무도 넓게 퍼져있는 죽음과 죽임의 문화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과학ㆍ기술주의와 자본주의 체계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이 말이 사실적 지식을 보증하는 과학은 물론,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획득한 엄청난 성공의 기반이 된 기술을 거부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또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민주사회를 가능하게 했던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공산주의적 발언이라고 성급히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대 세계를 가능하게 했던 이 과학과 기술과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를 성찰하지 않을 때 그 내적 논리는 과잉으로 치닫게 되고, 마침내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죽임의 문화가 넘쳐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정당한 과학ㆍ기술과 자본주의는 생명과 삶을, 그 존재론적 의미를 성찰하지 않을 때 오히려 죽음을 초래하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독일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지닌 생각을 계산적 사고와 숙고적 사유로 구분한다. 계산적 사고는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실증주의를 뒷받침하는 사고로,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사물로 환원하여 생각하는 문화의 기반이다.

그에 비해 숙고적 사유는 존재의미를 성찰하는 생각을 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한 과학 지식과 문화적 풍요는 물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자본주의의 한계를 직시하는 숙고함이다. 그와 함께 이런 과정을 거쳐 밝혀낸 존재의미를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사람, 다른 생명과 공유할 수 있도록 문화적 전환을 이루어 가야 한다. 그래서 현대사회의 인간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의미론적 철학이 절실해진다.

생명철학은 생명의 존재론적 의미를 밝힘으로써 그 절박함에 대답하고자 한다. 이 철학은 생명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의미를 드러내려 한다. 자본주의가 자본을 삶과 사회의 준거로 설정할 때 자본은 다만 수단이라고 말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는 과학ㆍ기술과 자본에 맞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다시금 교회를 돌아보고, 교회가 운영하는 수많은 기관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병원과 복지기관은 물론, 초중등학교와 대학, 또는 언론을 비롯한 다른 사업체는 과연 복음 정신을 전파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사회는 교회의 말이 아니라 교회의 행동을 보며 판단한다. 우리가 운영하는 기관은 교회가 지닌 진리의 말씀이 정당한지 판단하는 시금석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기관들이 혹시라도 기관 자체의 논리에 매몰되어 우리가 해야 할 근본적인 복음 정신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나아가 얼마나 우리가 지닌 진리의 말씀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복음 정신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진리와 생명에 있으며, 그를 이끌어가는 근본적 마음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똑같은 무게를 지닌 이웃 사랑이다. 어쩌면 죽음의 문화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이 마음과 이 태도 때문이 아닐까. 교회 바깥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비판하는 그 눈으로 다시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생명과 살림의 문화를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신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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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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