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 국회 상임위 통과, 병원 밖 출산 등은 예방하지만 일부 조건에 따라 낙태 허용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은 뒤 지방자치단체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가 지난달 25일 국회 상임위원회(보건복지위)를 통과했다.
사진=김영주 국회의원실
‘보호출산제’가 8월 25일 국회 상임위원회(보건복지위)를 통과하면서 유령 아기 출산을 예방하는 제도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생명 전문가들은 태아의 생명을 지키는 데 한 걸음 나아갔다는 사실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낙태 허용 범위를 명시하는 모자보건법 14조가 법안 내용에 포함된 것에 우려하고 있다.
‘보호출산제’는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은 뒤 지방자치단체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병원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로 인한 산모의 병원 밖 출산, 낙태율 증가 등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낙태 허용 조항’이 그대로 포함되면서 취지가 무색해졌다.
상임위를 통과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7조 2항에 따르면 “위기 임산부가 아동을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충분한 상담과 안내를 제공해야 하며 가능한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낙태 허용 조항인 모자보건법 14조는 상담과 안내에 해당한다.
가톨릭대 의대 김찬주(아가타, 의정부성모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교수는 “안내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산모와 영유아 건강 증진 명목으로 들어간 조항이니만큼 이후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는 병원 정보나 그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해줄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가능한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다’는 언급에 대해서도 “낙태 알선과 다를 바가 없다”며 “건강에 관한 모든 상담은 생명 존중에 근거해야 하고, 그 생명에는 태아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라이프의사회장이자 산부인과 전문의인 차희제(토마스) 원장도 “이는 반드시 경계하고 짚고 가야 할 사항”이라며 “은근슬쩍 낙태 합법화를 추진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규탄했다. 차 원장은 “산모와 영유아의 건강 증진과 낙태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미국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쾌거가 나온 지 1년 이상이 지났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생명을 지키는 획기적인 움직임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후속 입법을 앞둔 지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바로잡을 기회”라며 “이를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과 행동을 구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는 모자보건법 14조 중에서도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낙태를 할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을 언급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박 신부는 “흔히 좋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는 살해해도 좋다는 모자보건법 14조는 산아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조항”이라며 “산모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라면, 더욱이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효력이 없어진 조항을 넣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교구 미혼부모기금위원장 박정우 신부도 “지금까지의 낙태 시술 대부분이 모자보건법 14조와 관계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조항이 왜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중요한 건 산모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근거로 법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이같은 반응에 국회 보건복지위 (위원장 신동근 의원)는 “궁극적인 법의 취지는 낙태율을 줄인다는 것보다 산모들이 모텔이나 화장실 등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며 “모자보건법 14조가 법안에 포함된 사안은 위기 임산부에게 먼저 현재의 지원책들을 우선 안내하고, 그럼에도 아이를 도저히 낳을 수 없다고 하는 경우 병원 밖 출산을 하지 않도록 낙태의 허용 범위에 대해 알려주는 최소한의 정보 제공”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박은호 신부는 “이번에 상임위에서 통과된 보호출산제의 목적을 보면, 여성만이 아니라 ‘그 태아 및 자녀에게 안전한 출산과 양육환경을 보장함으로써 생모 및 생부와 그 자녀의 복리 증진에 이바지한다’고 돼 있다”며 “입법 취지가 온당하게 작용해 산모와 영유아 모두의 생명을 지키도록 교회 안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