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맡은 한진섭 조각가를 축복식이 있기 바로 전날, 현지시간 1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앞에서 만났다. 한 작가는 취재진과 함께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이 거행될 장소를 함께 둘러보며 "한국 신자들만 알고 있는 김대건 신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김대건 신부의 신앙심과 정신을 전 세계에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진섭 조각가 일문일답>
Q. 언제 작업을 처음 시작하셨는지, 어느 정도 기간에 걸쳐 제작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22년 8월부터 1일부터 돌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탈리아 까라라 삐에트라산타 동네에서 8~12월 5개월 정도 돌을 찾았고요. 1월 9일에 최종적으로 돌이 선정되었어요. 그러니까 1월 9일에 돌 작업을 시작해서 8월 말에 작품을 종료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돌로 제작한 기간은 8개월 걸렸네요. 그리고 9월 4일에 운반해서 9월 5일 날 성 베드로 대성전 외부 벽감에 설치 완료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대리석을 찾는데 5개월, 돌 조각하는데 8개월 그리고 작품을 구상하는 기간과 모형 제작하는 기간이 약 1년 걸렸네요. 그러니까 총 2년이 조금 더 걸렸네요.
Q. 오늘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이 거행됩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떤 생각 드시나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우리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설치하고 또 그 제작을 제가 만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이거는 이게 내 계획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떻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인데요. 작업을 하면서 정말 어려운 일들이 많았어요. 돌 구하는 것부터 제작, 설치 완료까지 조마조마했는데 무사히 모든 분들이 기도해 준 덕분에 잘 설치를 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설치하고 나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었는데 정말 감격스럽고 우리 대한민국의 굉장히 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Q. 성 베드로 대성전에 동양 성인 성당이 설치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요. 한국 교회의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하셨을 것 같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조각 성상이 한 1천여 개 있다고 하는데요. 전부 서양 사람의 모양 조각이고 동양 사람은 이제 최초예요. 그리고 또 동양 사람이면서 한국 전통 의상을 이렇게 갓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형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겁니다. 정말 독특하고 어떤 조형적으로 좀 남다른 그런 조각이 세워지게 된 것 같아요.
Q. 제작 기간이 긴 만큼 그 과정 속에서 좀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실까요?
제일 힘든 게 대리석을 찾는 일이었어요. 이 대리석이 한 4m 가까이 되는 통로를 문양이 없어야 되고 또 크랙이 없어야 되는 이러한 돌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따뜻한 느낌이 나야 되고요. 이건 저 혼자 찾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옛날에 제가 까라라 아카데미아에서 공부를 할 때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지금 까라라 대학에 교수도 하고 여기에 중견 유명한 작가들인데 이분들이 다 힘을 합쳐서 찾아주었고 또 이 작업을 하면서 한국의 제 작업장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있는 작업장에서 하다 보니까 작업하는 방법도 다르고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제가 통솔하고 지휘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하는 것보다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일 힘들었던 거는 운반해서 설치하는 일인데요. 통돌로 발목으로 전체를 지탱을 해야 해서 위험하고 또 손가락이나 벌리고 있는 손이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 정말 아슬아슬했는데 정말 모든 분이 기도하여 주는 덕분에 아주 완벽하게 안전하게 설치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Q. 성 김대건 신부 성상을 만드시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을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만 알고 있는 우리의 김대건 신부님이 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심과 정신을 전 세계에 알려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Q. 제작하면서 많은 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 마음에 품은 성경 구절도 있으실까요?
이 작업을 하면서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같이 가기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언쟁도 있었고 마음도 불편한 일도 있었는데요. 제가 이 사람들을 보듬어서 가야 하니까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생각하라' 구절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제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챙겼던 것 같아요.
Q. 사진으로 공개된 김대건 신부 성상 모습을 보면 이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으신 모습입니다. 두 팔을 벌린 모습이었는데 이게 어떤 김대건 신부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은 까라라 비앙코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는 3m 70cm이고 한국 전통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두 팔을 벌린 형태인데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에 태어나셔서 1846년에 돌아가셨어요. 24살에 신부님이 되시고 25살에 돌아가셨는데 젊은 이분은 굉장히 한마디로 말해서 담대하고 신앙심이 엄청 깊은 분인데요. 그러니까 신앙심이 깊고 담대하다는 거는 배짱도 있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젊은 담대한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고 그러면서 인자하고 어떤 부드러운 그런 느낌이 동시에 나타났으면 하는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었어요. 담대하면서 어떤 부드러운 그런 우리 신부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그런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Q.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 자세에 조각가의 많은 고민이 담겼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두 팔을 벌린 자세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모든 것을 다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내가 품을 수 있는 그런 여유로운 우리 신부님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Q. 성상 밑에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한글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가 적혀 있고요. 똑같은 내용으로 밑에 라틴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왼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Q. 작업을 하는 중에 유흥식 추기경과 한번 만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이야기 나누셨는지 궁금합니다.
교황님의 허락을 받아내신 분이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인데요.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이 아니었으면 이 일이 성사될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교황님의 허락을 받아 제작하니까 중간 과정이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작업하는 작가에게 용기를 주러 삐에트라 산타에 한 400km를 운전해서 오셨어요. 그래서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제가 이탈리아 사람 둘하고 같이 작업을 하는데 우리 유흥식 추기경님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정말 우리 추기경님의 따뜻한 마음과 여러 가지를 이 사람들이 전달을 받아서 더 열심히 작업을 했어요. 또 추기경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우리 동네 시장님이 오셔 가지고 주변에 성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제작되는 게 소문도 나서 더 많은 격려를 사람들에게 받았어요. 굉장한 힘을 주고 가셨습니다.
Q. 조각가님께 김대건 신부란 어떤 의미인가요?
1800년대에 한국에 신부님이 없으셨을 때 첫 사제가 되시면서 순교를 당하신 건데 정말 대단한 배짱과 용기를 가진 한마디로 담대하신 분이다. 젊은 25살에 돌아가셨는데 그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배짱과 용기를 가지고 신부님이 되시고 돌아오셔서 죽음을 각오하고 선교하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은 정말 담대하신 분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Q.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이 기쁜 소식을 접할 신자들에게 한마디.
우리 김대건 신부님이 이제 한국에서만 알려진 김대건 신부님이 아니라, 세계인이 지켜보는 또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성인이 되셨어요. 그래서 우리 한국분들이 그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우리나라의 가톨릭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이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김대건 신부님이 베드로 대성전에서 전 세계에서 그 가톨릭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