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동부가 폭풍의 피해로 폐허가 되었다. 9월 건기인데도 폭우가 쏟아지면서 두 개의 댐이 무너져 내린 항구도시 데르다는 바다로 떠내려갔다. 사망자가 이미 2만 명 이상이라는데, 사실 이 숫자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뉴스에 나오는 폐허의 광경은 끔찍하고 처참해서, 바로 쳐다볼 수도 없다.
산유 부국인 리비아는 식민 지배와 독재 체제로 오랜 세월 큰 고통을 겪었다. 독재자 카다피가 사망한 후에도 10년 넘게 이어지는 분열과 내전, 지배 엘리트 계층의 사익추구와 권력투쟁 놀음으로 이미 위기상태였다. 자연재해에 더해 “부패, 열악한 인프라, 범법 권력자들의 면책, 시민사회 탄압”으로 사회 전체가 붕괴해버린 인재가 된 것이다.(리비아 인권 변호사 엘람 사우디의 「가디언」 인터뷰)
이 참사는 서구 강대국들의 침략과 수탈의 역사와 서로 뗄 수 없다.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 아래 있던 리비아는 1969년 왕정체제를 혁명으로 무너뜨렸다. 혁명 정부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미국은 이를 저지하려고 산유시설을 폭격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이슬람 극단 세력이 확산되자, 미국과 나토는 이를 빌미로 리비아 내전에 개입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2015년 유럽의 난민 위기 때, 유럽연합은 아예 리비아의 지중해 연안을 봉쇄해버렸다. 강대국들은 이익이 문제 되면 언제나 평화 대신 폭력을 선택한다. 국민 대다수가 농부인 나라에서 어떻게든 이익을 챙기려고 개입한 미국과 유럽의 권력이 리비아의 부패 엘리트를 만들어냈다. 리비아 참사는 제국의 책임이라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안락이 그 제국의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눈감고 살고 있는 부유한 국가의 부유한 시민들의 무지도 상당하다.
이 참사는 또한 기후위기와도 관련된다. 올해는 1884년 관측 이래 최대 강우량을 기록한 홍콩을 비롯해 그리스, 미국, 스페인, 중국에서 전례 없는 호우 피해를 입었다. 빈도와 정도로 보면 극심한 기상이변이다. 자연재해는 이제 기후위기의 가장 뚜렷한 징후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면 자연재해와 사회적 재난이 하나라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이렇듯 정치와 거버넌스, 강대국의 개입, 시민사회의 역할과 대응방식에 따라 파멸하거나 아니면 회복하는가 하는 갈림길로 들어선다. 언뜻 기후변화를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관료주의의 문제로만 보려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기후위기와 연관된 재해는 민주주의와 제국주의와 깊게 엮여있다. 기후위기는 공공적인 것의 소멸, 즉 사유화와 부패, 식민주의와 군사주의, 그리고 다른 존재 전체를 타자로 만드는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로 가속화된다.
이런 복합적인 삶의 위험에는 빠른 해결책이 없다. 달려가기는 하지만 끝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달리기의 규칙을 에너지 회사와 은행, 군산복합 회사가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위기를 절감하면서도 다른 편으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과 방향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삶뿐 아니라, 사회적인 삶도 이미 시장과 이익의 과도한 개입으로 공동의 관심을 증진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정치와 문화의 쇄신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복리를 살아야 하는 삶의 핵심에 사람들 사이의 연결점, 즉 공동선을 되살려 놓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선익을 증진하고 악을 피하며 악에 저항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품위 있고 고귀한 인간이지 자문해 보라. 온 세상 어디에나 고향은 있다.”(나오미 클라인,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난 꽃」) 9월 23일 ‘기후정의행진’에서 그 고향을 만나 볼 수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