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순인데도 야생초 싹이 올라온다. 대기 온도가 최저 12℃를 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김장배추 모종 적기인 8월 중순~8월 말이면 야생화 씨앗이 발아하지 않았다. 이는 대기 온도가 한 달 이상 평년보다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하느님께서 인간(노아)뿐만 아니라 동물들과 함께 맺은 계약(창세 9,9-10 참조)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초대형사건’이다. 이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향해서, 그들의 번성을 위해 구축하신 생태계를 지키시겠다는 약속이다. 생태계의 균형을 지켜야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메커니즘을 하느님은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계약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땅은 그 대가로 저주를 받을 것(창세 3,17)이라고 하신 말씀의 연장선에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죄’로 벌어지는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메커니즘의 붕괴에 대한 최초의 말씀이다. 계약이란 구속력이 있다. 하느님이 스스로를 구속시키시는 계약을 인간이 파기하는 것은 ‘죄’다.
온실가스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올해 일어난 대형산불, 극한 호우, 한반도를 직선으로 통과한 태풍 카눈의 현상은 우리나라가 이미 티핑포인트(임계점)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경험하는 기후현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올해의 기후현상은 다만 기후변화가 더 심해지고 있을 뿐으로 인식할 뿐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실행도 현재 미흡하다. 나아가 전 국민적 인식 부족과 구체적 공감대 형성 및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는 현재에만 관심이 있고,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미래는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주류 사회로의 진입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치명적 문제점이다. 서울 사대문 안 대학 진학에서, 이제는 의대 진학이 아이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기현상이 나타남에도 여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기후위기는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결정하지만 남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이다. 경제적 풍요의 조건인 주거, 이동수단, 소비와 생산의 형태, 유통의 방법을 바꾸는 문제는 익숙하지 않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노엘레 노이만(Noelle Neumann)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이론’ 현상이 기후문제에 더욱 무관심하게 만든다. 사회적 이슈가 자신의 의견과 동일하면 적극 나서지만 동일하지 않으면 침묵하는 데에 익숙하다.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고립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제적 이익 문제에는 적극 나서지만, 환경과 같은 이슈에는 소수 환경주의자들의 의견으로 비쳐 나서기를 꺼려한다.
독일은 현재 경제성장의 패러다임과 작별을 고하는 ‘탈 성장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대해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미 1972년 발표된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는 경제성장률이 제로가 되어야만 지구 온난화에 대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고 있다.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매달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발표와 이에 대한 ‘7년 여정’을 권고했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실천 지침을 제시했지만, 최일선 본당에서는 대부분 무관심하다. 특히 기후위기 관련 정책 입안이 가장 중요한데, 가톨릭 신자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로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거부하는 ‘죄’라고 할 수 있다. 기후 문제는 모두가 살거나, 모두가 죽어야 하는 문제다.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예로보암 2세를 향해 비판한 호세아 예언자가 절실한 시대다.
김사욱 시몬 「기후위기와 생태영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