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과일나무 하나를 심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 집 땅에만 심을 수 없었다. 그래서 윗집과 상의해서 우리 집 앞마당과 이웃집 뒷마당 땅을 합쳐 나무를 심기로 했다. 나무는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탐스러운 열매를 제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사람 몇몇이 이 나무를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무가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으니 맘대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운동을 해야 힘을 키우는데 나무가 있으니 불편하다는 논리였다.
사실 우리 집은 윗집과 사이가 좋지 않다. 심하게 싸운 적도 있어 오랫동안 서로 믿지 못하며 살고 있다.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운동해야 윗집이 쳐들어왔을 때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무가 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윗집도 마찬가지였다. 나무는 그들의 뒷마당도 차지하고 있으니 윗집 사람들도 맘대로 운동을 못 하고, 심지어 큰 나무까지 있으니 쉽게 우리 집 마당에 넘어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웃도 싫고 나무도 싫었던 사람들은 운동을 하려면 나무를 뽑아버리거나 베어버려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나무 때문에 얻는 이익이 훨씬 큼에도, 앞으로 큰일 날것이라며 겁을 줬다.
사실 우리 집은 꽤 부자여서 마당이 아니라 안방에서도 첨단 운동기구로 얼마든지 운동을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고가의 운동기구가 없는 윗집이 불안하면 더 불안하겠지만, 그럼에도 앞마당에서 운동을 못 하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말만 계속이다. 나무가 주는 그늘과 열매가 얼마나 큰데도 집안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말에 이 나무는 위태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 이 나무는 ‘9.19 합의’라는 나무다. 지난 2018년 9월 19일 남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를 맺었다. 이 합의는 남북의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해 군사분계선(휴전선)의 남북으로 20~40㎞까지를 전투기와 정찰기가 비행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담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군사당국자회담 정례화 등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후속 합의로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낮추자는 의미로 체결되었다.
실제로 이 합의 이후 우리 쪽뿐 아니라 북측도 우리 쪽에 대한 감시, 정찰 업무가 제한되었고 그만큼 일촉즉발의 갈등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9.19 합의”에 대한 효력 정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지난 10일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 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 데 굉장히 제한된다”고 주장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방어하는 데 제한사항이 있으면 적극 개선 노력을 하는 게 국방장관의 책무”이기에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부분만 보고 전체는 보지 못하는 시각이다. 감시 업무는 남북 상호 간 제약되는 조치이고, 첨단 정찰자산을 보유한 우리에게 훨씬 이득인 조치다. 우리가 뒤로 물러난 만큼 북도 뒤로 물러나게 되어 안전이 확보된 조치를, 접경지역의 감시 활동을 위해 나무 전체를 베어버리자는 주장은 북의 감시 및 훈련을 지금보다 20~40㎞ 이남까지 허용하자는 주장인 셈이다. 그럼에도 마치 우리만 앞마당에서 운동을 못 하기에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그나마 남아있는 남북의 군사 분야 합의를 무력화시켜, 다시 긴장과 갈등이 일어나는 게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전쟁은 압도적 무력만으로 막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 구축이다. 압도적 무력을 갖춘 이스라엘도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 9.19 합의는 남북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군사적 신뢰 장치다. 우리가 먼저 이 나무를 베어버리기에는 이 나무가 주는 그늘과 열매가 너무나 소중하다.
정수용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