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숭공학교 학생들이 뮈텔 주교님에게 선물한 강론대예요.” “오, 그렇군요.”
작은 흑백사진 한 장을 유심히 살펴보며 대화하는 두 장상의 눈이 반짝인다. 주인공은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 5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특별기획전 ‘아니마 문디(Anima Mundi)’ 개막 행사 풍경이다.
이 전시는 1925년 정기 희년을 맞아 비오 11세 교황이 바티칸에서 개최한 선교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당시 한국 교회 3개 교구(서울·대구·원산대목구)가 수집해 박람회에 출품한 유물과 예술품 270여 점을 선보인다. 정 대주교와 박 아빠스가 본 명동대성당 옛 강론대 사진도 그중 하나다. 그렇게 눈에 띄는 전시물은 아니지만, 이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강론대를 주고받은 인물의 후임이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로 만든 이 강론대는 1915년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주교 수품 25주년을 축하하는 ‘깜짝 선물’이었다.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가 서울 백동(혜화동)에 설립한 기술학교인 ‘숭공학교’의 목공부가 제작했다. 뮈텔 주교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을 방문해 성 베네딕도회에 한국 선교 파견을 요청한 인물이었다. 백동수도원장 사우어 아빠스의 지시에 따라 수사와 학생들이 꼬박 1년 동안 강론대를 만들었다.
3월 11일 아침 새 강론대를 본 뮈텔 주교는 놀라워하며 ‘훌륭하고 완벽하다’는 평을 일기에 남겼다. 그리고 백동수도원을 찾아가 사우어 아빠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의 조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치열한 혈투를 벌인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기간에 있던 일이었다.
1920년 사우어 아빠스가 원산대목구장에 임명돼 주교품을 받은 뒤로도 긴밀한 관계는 유지됐다. 모든 교구가 힘을 모아 전시물을 출품한 바티칸 선교박람회가 그 방증이다. 평화가 절실한 지금, 100년 전 두 장상의 행보가 남다르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