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를 펴낸 김금희 소설가는 “희망, 기도, 소망, 사랑, 믿음처럼 현실에서 닳아버린 단어들을 되살리는데 글 쓰는 일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창비 제공
박정민 배우 출판사 ‘무제’서 낸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책
“글쓰기는 세상 구석 비추는 일
불행과 슬픔에 관심 갖는 건
종교의 역할이자 문학의 역할”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어들을 더 믿게 됐어요. 희망이라든지 소망, 사랑, 믿음 같은 단어들요. 현실에서는 너무 닳아버린 단어들이기도 하거든요. 이 단어들을 되살리는 데 저의 글 쓰는 일이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6월 29일 서울 강동숲속도서관에서 김금희(마리아) 소설가를 만났다. 그는 ‘남극에서 배운 언어들’을 주제로 한 강연을 앞두고 있었다. 인터뷰 후 진행된 강연에서는 대자연에서의 경험이 알려준 연대·겸허·자연적 질서 등에 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올해 5월 출간된 「첫 여름, 완주」는 박정민 배우의 출판사 ‘무제’에서 펴내는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으로 먼저 제작된 뒤 종이책으로 출간됐다. 장편소설이지만 대사와 지문이 살아있는 입말로 구성돼 있다. 김 작가는 “음성 언어는 머무는 언어가 아니기에 촉각이나 후각처럼 자연이 주는 감각적인 부분들을 소설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첫 여름, 완주」에서 빚을 갚지 않고 사라진 선배 고수미의 고향 완주 마을을 찾은 성우 손열매는 합동 장의사 겸 매점을 운영하는 수미 어머니 집에 머문다. 낙담한 마음과 상처를 안고 매점을 지키며 각양각색의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열매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혜적 사랑을 경험하며 다시 세상을 나설 용기를 얻는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여름 한철을 저마다 ‘완주’한다.
그는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적극성이 생긴다”면서 “무언가 끊임없이 구석구석을 비추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전달하는 것이 작가가 지녀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첫 여름, 완주」 표지.
「첫 여름, 완주」 출간 제안을 받고 난 뒤에는 시각장애인들과 ‘소리로 하는 독서’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를 먼저 제안했다. 김 작가는 한 달가량 남극 기지에 체류하며 쓴 에세이 「나의 폴라 일지」도 올해 초 출간했다. 새로운 세계를 전할 때 그는 자신의 몸을 그 세계에 먼저 던진다. 그의 소설에는 호기심과 용기가 담겨 있다.
김 작가는 2023년 봄에 세례를 받았다. 오래전부터 성당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연작소설 「크리스마스 타일」을 쓰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관찰하고자 동네 성당에 갔다. “가톨릭에 마음의 문이 열린 계기는 모르겠어요. 그냥 열렸어요. ‘열까 말까’ 고민도 없이, 당연한 듯이 확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김 작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믿을 구석’이 생긴 기분이라고 했다. “전에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끝도 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가라앉다가도 이렇게 받쳐주는 손이 있어요. 그래서 그 손을 잡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는 “「첫 여름, 완주」에서 주인공 열매가 좌절을 향해 갈 때 낙하하는 기분을 느낀다는 표현을 썼다”며 “열매가 여름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그 붙들어주는 손과 만날까 하는 서사를 생각할 때에도 천주교라는 새로운 세계가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 세계가 겪는 불행과 슬픔에 주목하고, 그것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종교의 역할인 동시에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하늘나라에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책을 좋아했어요. 교황님은 희망·기도·사랑 같은 말들의 편에 아주 단호하게 서셨거든요.”
김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너무 한낮의 연애」 「복자에게」 등이 있으며 경향잡지에서 ‘김금희의 「준주성범」 나눔’과 가톨릭 출판사 ‘가톨릭북 플러스’를 통해 성당 일기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