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남 1녀 중 장남입니다. ‘맏이답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병을 얻었지만, K-장남으로서 책임과 무게를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병은 이른 철듦을 가져온다지만, 저는 병보다 먼저 장남으로서 의젓함과 참을성을 배워야 했습니다. 희생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자리, 그 무게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일 겁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있었느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상태로 판단합니다. 아픈 사람은 종종 ‘불완전한 존재’, 꿈과 비전조차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간호사의 꿈을 키워가는 여동생, 그리고 한 달 수입을 계산하며 신음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살림살이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효도’라는 두 글자가 간절했습니다. 미니카·레고를 사달라고 크게 떼를 쓴 이후 장난감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기쁨보다는 가족의 평안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이 어릴 적 제게 써준 손 편지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성가대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오빠 몫까지 성당을 다니며 언제나 기도하고 땀 흘리던 아이. 저는 여동생을 때린 일이 평생 한 번뿐이었고, 아기였던 시절엔 언제나 안아주고 맛있는 건 양보하곤 했습니다. 걷는 것조차 힘겨웠던 시기에도, 여동생을 때린 아이를 혼내주러 낑낑거리며 따라나섰던 오빠였습니다.
녀석은 오빠 때문에 마음 아파했고, 형편 때문에 수없이 힘들어했지요. 냉담자가 되었지만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 기도를 잊지 않으셨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그분께서는 저를 통해 여동생을 다시 부르시고자 하십니다. 어릴 적 여동생이 제게 지향했던 그 기도처럼, 이제는 제가 그녀의 영적 후원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울 S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크리스티나. 처음엔 제 병을 고쳐주겠다며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그 마음을 간호사의 삶으로 실현해 냈습니다.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자랑이 되었습니다. 모니카 성녀가 주교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립니다. “피눈물 흘리며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이는 엄마의 순박함과 희생이라는 성덕으로, 동생 안에서 이루어진 주님의 은총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부서지고, 쪼개지고, 철저히 불행한 자였으나, 저는 지금 ‘행복하다고 선포된 자’로 살아갑니다. 비참할 때라야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스며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자신의 창조 사명을 깨우치는 사람이 성인이고 성녀라는 말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유행했었죠. 비판도 쏟아졌습니다. ‘가족주의에 의한 강요된 희생이다.’ ‘희생이야말로 외상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사람이 사랑과 희생의 기능을 제거하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조건 속에 서보지 않고서는 가족주의를 폭력이라 단정 짓기 쉽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서로의 희망이 되고, 고통을 나누는 평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참된 사랑으로 서로의 구원 여정에 함께 머무는 공동체냐, 아니면 흩어진 개인들의 외로운 방황이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세속적 영혼은 ‘가족주의’가 불행이라 말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가족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작은 교회이며, 십자가 위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K-장남으로서 가족을 위한 작은 봉헌을 드립니다.
신선비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