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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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선조 삶에 스민 무궁무진한 신앙의 보화 느껴”

6개월간 전국 성지순례 완주한 박현동 아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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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죽림굴을 마지막으로 6개월간 한국 천주교 전국 성지순례를 완주한 성 베네딕도 수도원 박현동 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가 최근 전국 성지순례를 완주했다. 올해 2월 27일 왜관 수도원 근처 가실성당을 시작으로 8월 28일 언양 죽림굴까지 6개월이 걸렸다. 마침 5월 7일부터 8월 7일까지 안식월이어서 3개월가량 집중적으로 성지순례를 다녔다. “신앙 선조들의 눈물과 희생을 새롭게 체험하며 한국 교회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는 박 아빠스와 서면 인터뷰로 소감을 들었다.

- 전국 성지순례에 임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지난해 ‘성 베네딕도 문화영성센터’를 완공하고 축복식을 마쳤습니다. 8년의 논의 과정과 2년의 건축 과정이 걸린 큰 작업이었습니다. 마무리 짓고 나니 안식년 차원에서 3개월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봉쇄 수도원에서 머물며 기도할까, 미국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방문할까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를 보면서 ‘우리 땅의 신앙 뿌리를 직접 밟아보는 것이 가장 큰 은총이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주교회의 시복시성위원회에 속해 있기도 하고 북한에서 순교한 형제들의 시복시성도 담당하고 있어서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순례를 마치고 난 소감은요.

“처음부터 완주를 계획한 건 아니었고, 가능한 만큼만 다녀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성지 한 곳 한 곳을 방문하고, 신앙 선조들의 향기를 느낄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싶어 완주를 결심했습니다. 완주하고 나니 무궁무진한 신앙의 보화가 신앙 선조들과 순교자들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죽림굴 올라가는 산길에 붙어있는 표지판에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써 있었는데, 우리의 신앙생활과 성지순례도 이와 같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 기억에 남는 순례지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모든 순례자가 힘들어한다는 ‘추자도’에서 저 역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약한 배가 취소돼 급히 다른 배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저녁 무렵 도착했는데,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들 도움으로 추자도 유일의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신자는 아니셨지만, 순례자를 많이 만나셨다며 순례지와 식당 정보까지 자세히 알려주셔서 무사히 순례를 마쳤습니다. 하느님께서 예기치 않게 보내주시는 은총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대구대교구 진목정과 구룡공소를 방문할 때는 비가 많이 쏟아지는 데다 좁은 산길을 위태롭게 운전하면서 가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박 아빠스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성지를 방문했지만, 성지에서 순례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다 보면 종종 그가 아빠스라는 사실이 알려지곤 했다. 그는 “왜관 수도원 아빠스를 순례길에서 만난 기억이 순례자들에게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평소 알던 사제와 수도자들의 가족이나 부모를 성지에서 만난 일도 특별한 기쁨이었다”고 했다. 또 “성지를 혼자 지키고 있는 사제들과의 대화도 인상 깊었다”고 했다.

- 국내 성지순례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무엇인지요.

“2010년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걸은 적 있습니다. 그때 썼던 모자와 조개 목걸이를 걸고 이번 순례를 했습니다. 산티아고는 워낙 웅장한 길이고, 늘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한국 성지는 작고 소박하지만, 신앙의 피와 눈물이 배어있는 장소가 많습니다. 오래된 공소, 깊은 산 속 교우촌, 작은 비석, 무덤에도 선조들의 신앙이 살아 있음을 매번 느꼈습니다. 이제는 차를 타고 지나가다 감곡·연풍·문경 등 안내 표지판만 봐도 그곳 성지들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를 완주한 박현동 아빠스(왼쪽)과 김운회 주교(오른쪽). 가운데에는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사목위원회 위원장이자 안동교구장인 권혁주 주교.

- 주교단 중엔 김운회 주교님께서도 성지순례를 완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춘천교구장이신 김 주교님께서는 은퇴 후 성지순례를 시작하셨습니다. 3년 만에 마치시고 올해 6월 완주 축복장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9월 18일에 축복장을 받습니다. 9월 초 전주 치명자산에서 주교영성모임이 열렸는데, 현재 주교회의 순교자현양과 성지사목위원회 위원장이신 권혁주 주교님과 전임 위원장이신 김선태 주교님 그리고 김운회 주교님과 저 이렇게 같은 그룹이었습니다. 덕분에 성지순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 성지순례를 계획하는 분들에게 완주자로서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성지순례는 도장 찍는 여정이 아니라 기도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강화도 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 담당 신부님의 말씀처럼 한 성지에 가면 최소한 1시간은 머물며 침묵 속에 기도하기를 권합니다. 가까운 성지부터 차근차근 역사와 순교자의 삶을 미리 공부하고 가면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요즘은 가톨릭 앱과 블로그에 성지와 순례에 관한 자료가 많습니다. 스마트폰 오디오 기능을 사용하면, 이동 중에 성지 소개를 들으며 갈 수 있으니 추천해 드립니다.”

박 아빠스는 “순례지 방문록을 보면 전국 곳곳에서 순례자들이 순례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성지순례가 더 많은 이의 삶에 스며들어 신앙 선조들의 증거가 오늘 우리 믿음 안에서 열매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아빠스는 성지를 방문할 때마다 카카오맵을 통해 위치를 표시해 뒀다. “다른 순례자들과도 나누고 싶다”며 한국 천주교 전국 성지 주소가 기록된 카카오맵 주소록을 QR코드<사진·안드로이드용>로 만들어 소개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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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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