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법조를 출입하면서 무당인 이모가 ‘귀신을 쫓겠다’며 복숭아 나뭇 가지로 조카를 때리고 물고문해 살해한 ‘서연이 사건’ 재판을 취재한 적 있다. 재판장에 들어가기 전 상상했다. ‘10살배기 아이에게 개의 배변까지 핥게 한 비정한 이모는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악한 짓을 했다면 분명 죄책감도 없겠지?’
그러나 실제는 너무 달랐다. 재판장에서는 한 여성이 울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조카를 죽인 무시무시한 이모가 아닌, 판사에게 ‘잘못했다’고 비는 유약한 존재만 서 있었다. 이렇듯 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딴판으로 드러나곤 한다.
가톨릭교회가 악으로 규정한 낙태도 그렇다. 낙태 자체는 잘못됐지만, 이를 고려하는 여성에게는 여러 사정이 존재한다. 그 이유를 참작하다 보면, 낙태가 ‘태아를 살해하는 행위’라는 본질은 쉽게 잊게 된다.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10년 전 낙태한 경험을 본지에 전한 박주현(레지나)씨도 낙태를 권유한 이가 다름 아닌 수녀라고 밝혔다. 교회 안에서 그것도 수도자가 낙태 병원을 소개했다니, 처음엔 이 내용을 기사에 담아도 될지 고민했다. 그러나 수녀의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낙태 후 큰 고통을 겪은 박씨 사연은 교훈을 준다. 어떤 이해관계가 있든 악은 악이다. 그 수녀도 박씨가 낙태 후 후회막심할 줄 알았다면 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낙태 관련 기사에 늘 달리는 댓글이 있다. ‘가톨릭 신자이지만 낙태는 찬성합니다.’ 위기임산부들의 사정을 고려할 때 낙태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취지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위기임산부를 만나본 적 있는가.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진심으로 낙태를 원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가톨릭 신자라면, 진정 그러한 이들을 위해 하느님 자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미혼부모·한부모·청소년 부모에게 존재하는 편견, 20만 원밖에 안 되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 열악한 출산·돌봄정책 등 목소리를 내야 할 곳과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명확히 바라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