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동하고 말하는, 즉 ‘행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분명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이기에 한 인격체가 지닌 유일무이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인간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반드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의 아우슈비츠와 같은 극단적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 증언합니다. 행위를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도 결정하게 됩니다. 단 한 번의 선행이 선한 사람을 만든다면, 단 한 번의 악행으로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버는 것, 심지어 밥을 먹으며 허기를 채우는 것까지도 모두가 더 나은 자신이 되려는 바람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바람에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분명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지속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선택하고 행위를 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격체의 자기 실현’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이 하느님 모상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인격체의 자기 실현을 “지상에서 그 자체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바라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사목 헌장 」 24항)라며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근본 소명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바람은 탐욕이며, 나의 욕망은 권리이자 권한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결코 하느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근본 소명인 ‘사랑’의 자리는 우리 안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 그래서 인간과 하느님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참된 인격들의 친교가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인격체가 자기를 실현하는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한 행위이고 악한 행위인지가 분명해집니다. 인간이 인격체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간과 하느님, 인간과 인간 사이 친교를 북돋는 행위가 선한 것이며 그 반대는 악한 행위입니다.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