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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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방 수사’가 된 ‘종로 깍쟁이’ 방유룡 신부

이학주 요한 크리소스토모(신문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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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깍쟁이’와 ‘방 수사’. 이 상반된 별명은 한 사제가 신학생일 적 얻은 것이다. 지난 9월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된 한국순교복자 수도가족의 창설자 방유룡(레오, 1900~1986) 신부다. 12월 8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본원 성당에서 열린 방유룡 신부 시복 추진 첫 학술 심포지엄에서 알게 된 내용이다.

서울 정동 태생인 방 신부는 중학교까지 다니다 중퇴하고 용산 예수성심 신학교에 입학했다. 학생들은 싸움도 잘하고 장난이 심한 그를 ‘종로 깍쟁이’라 불렀다. 방 신부는 또 여름 방학 때면 ‘빳빳한 모시 두루마기, 맥고모자, 단장, 금테 안경, 귀또 구두’ 차림으로 다녔다. 학생들은 이를 ‘건달이나 하는 복장’으로 보고, 그가 신학교에서 쫓겨나거나 자퇴할 것으로 생각했다. 교수 신부들도 방 신부가 사제로서 자질이 없다고 판단해 퇴학시키려고 들었다.

그런데 1919년 여름 방학 후 방 신부는 완전히 변한 모습으로 학교에 돌아왔다. ‘성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뒤 소탈한 차림으로 규칙을 잘 지켰다.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런 그에게 학생들이 새 별명을 지어줬다. ‘방 수사’라고.

무엇이 방 신부를 변화의 길로 이끌었을까. 교회사학자 방상근 박사는 같은 해 일어난 ‘3·1운동’에 주목했다. 1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독립 만세’를 부르짖을 당시 신학교 분위기는 달랐다.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와 교수 신부 등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학생들이 3·1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신학교를 떠난 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방 신부가 사색 끝에 삶의 자세를 바꿨을 것이라고 방 박사는 추측했다. 사실이라면, 3·1 운동은 한국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독립운동에도 주춧돌이 된 셈이다. 방 신부의 한국순교복자 수도가족 설립이 한국 교회 정체성 확립의 출발점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의 변화는 교회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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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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