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도직 현장에서]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전혀 새로운 양상을 보입니다. 죽음을 앞둔, 병환의 고통은 받아들일 수 없는 좌절이 되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벗어나야만 할 것처럼 여겨지며, 앞으로 더 큰 고통을 겪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렇게 되면 죽음은 ‘당연한 해방’이 되며, 곧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죽음의 형태가 존엄사, 즉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입니다.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환자의 생명을 끝내는 것이고, 조력자살은 의사가 치명적 약물을 제공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이를 투여해 생명을 끝내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젊고 건강할 때에는 스스로를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런데 늙고 병들면 스스로 쓸모없다고 판단하며 하느님의 모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갑자기 자신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같은,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근본 관계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죽음의 형태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합리적인 효율성만 강조되는 현대 사회는 안락사의 유혹을 더욱 부추깁니다.

안락사는 이른바 과도한(균형을 넘어서는) 의학적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 반드시 구별돼야 합니다. 사람은 양심 안에서 정상적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 앞에서 인간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호스피스가 중요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명의 복음」에서 “저는 안락사가 하느님 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임을 확인하는 바입니다”(제3장 65항)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살의 깊은 실재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에 대한 거부입니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건너라, 네 삶을, 그리고 나에게 오라.” 생명은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오석준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2-1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2. 18

1코린 1장 8절
주님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