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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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노화도 학습이 필요하다

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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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노화, 죽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처럼 어른이 된 후에도 멋진 노인으로 늙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과 준비가 필요하다.

마가렛 크룩생크(Margaret Cruikshank)는 「나이듦을 배우다(Learning to be old)」에서 노화는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되는 역동적 과정임을 강조했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결과는 개인이 노화를 어떻게 준비하고 적응하느냐 그리고 어떤 사회적 규범과 환경 속에서 나이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잘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화를 학습해야 한다.

노년기가 인생의 절반까지 길어진 초고령사회에서, 긴 노년을 활동적이고 의미 있게 보내려면 더 이른 준비와 더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올해 초 출간된 100세 시대 노년학총서 시리즈 첫 권인 「100세 시대 노년학」에서 필자가 던진 첫 질문은 “왜 노년학인가?”였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대수명으로 누구나 ‘노화’를 경험하게 됐기 때문이다. 둘째, 노년기가 길어진 만큼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중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셋째, 인생의 최종평가는 생애 마지막 시기인 노년기의 시각에서 내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년의 실패는 절반의 실패가 아니라 인생 전체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길어진 노년기를, 더 나아가 전 생애를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노인과 노화를 학습하고 노년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노년학은 필수과목이다.

그렇다면 ‘노화를 학습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청소년기를 정체성의 위기로 규정했다. ‘정체성(正體性)’이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고유한 특성이다. 그런데 인간은 계속 발달·변화하고, 그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가 달라지며, 사회 자체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정체성은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것이다.

에릭슨의 주장과 달리 노년에 다시 한 번 제2의 정체성의 위기가 찾아온다. 윌리엄 새들러(William Sadler)는 「서드 에이지 : 마흔 이후 30년(The Third Age)」에서 노년을 ‘제2의 성장기’로 정의했다. 제2의 성장은 새로운 정체성의 전환으로, 직장과 가족,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된 나’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만의 삶’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제2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노년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나’가 아닌,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나’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며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면의 성찰을 통해 그리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간구해야 한다.

노년기는 노화로 인한 자기 내부의 변화와 외부 사회의 변화 사이에서 남은 인생의 절반을 살아갈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결국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해체하고 새로 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화를 학습하는 첫걸음이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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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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